기사제목 [김성열 칼럼] 7월 한여름 6.25전란 역사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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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열 칼럼] 7월 한여름 6.25전란 역사기념일

기사입력 2020.07.0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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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열실장.png▲ 김성열 소장 / 천안역사문화연구소
[천안신문] 1950년 6.25는 전쟁이 아니다. 6.25남침 전란이다.

6.25전란을 도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유엔이 불법 남침으로 규탄하고 유엔군 파병을 결의하였다. 또한 1953년 7월 27일에 6.25전란이 휴전협정으로 체결조인한 달이다.

6월 25일 유엔은 즉시 유엔이 합법정부로 공인한 자유대한민국정부를 침범한 북한인민군 침략행위는 유엔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탄한다.

6월 27일 미국 해·공군 한국 참전을 잠정 결정한다. 6월 28일 국군이 한강 인도교를 폭파한다. 3일 만에 서울이 인민군에게 점령된다. 6월 28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세계 평화와 한국안전보장을 위해 군사 원조 제공을 결의한다.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이 병력을 즉시 보내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6개국이 의료 물자 의료진을 도왔다. 6월 28일부터 대한민국 상공에는 일본에서 날아온 제트기와 무스탕 호주기 그리고 B29기가 제공권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7월 1일 일본을 출발한 미국 육군보병 제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 스미스 중령 특수부대 406명이 비행기로 부산에 도착하여 열차편으로 천안을 지나 평택에 도착한다.

그리고 제34연대는 배로 일본을 출발하여 부산에 입항하여 열차편으로 대전에 도착하여 전황을 파악하면서 이동 명령을 기다렸다. 7월 3일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오산 북쪽에 진지를 점령하고 인민군 전차 탱크와 접전한다. 그러나 인민군 전차 탱크를 파괴할 무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철수한다.

7월 4일 제34연대 제1대대는 평택까지 이동한다. 7월 5일 제21연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죽미령 진지 점령 최초로 오산전투 참전하였다. 그러나 제21연대 철수하여 병력을 안성, 평택 진지로 이동한다. 제34연대 제1대대는 퇴각하는 제21연대 병력을 맞이하면서 평택에 진지를 점령한다.

국군은 경부선을 중심으로 한 서부전선을 미군에게 작전을 위임하고 중부전선으로 이동한다. 미군은 인민군의 남진을 지연 저지하라는 작전명령을 받는다. 7월 6일 제34연대는 평택에서 성환으로 철수한다.

제21연대 병력은 안성에 진지 점령한 후 전투 없이 성거를 지나 천안 도리티 고개까지 철수한다. 7월 7일 철수 작전 지시명령을 잘못 판단한 제34연대는 평택, 성환에서 천안 철수 중지하라는 명령을 받고 천안 북쪽 재 접전을 위해 이동한다.

한편 인민군은 성환에서 아산으로 돌아 천안 서부 방면 백석동, 신방동으로 천안에 진입한다. 안성방면에서 퇴각하는 미군 제21연대를 쫒은 인민군 병력은 성거쪽에서 천안으로 진격한다.

천안역전 옛 천안경찰서에 제34연대 지휘본부는 서북동에서 압박하는 인민군 병력에 완전 포위 되었다. 부대동, 신부동, 천안역 부근 전투에서 패전당한 제34연대 제3대대는 천안읍내 전역에 흩어져 지휘 체계 없이 무질서한 시가전을 하면서 구성동을 지나 도리티고개 쪽으로 후퇴 한다.

7월 8일 아침 8시 인민군 탱크 전차 6대가 천안읍내 진입하고 일부 병력이 포위당하고 있다는 보고 받은 제34연대장 마틴 대령은 격전장에 직접 뛰어들어 바추카 포를 들고 탱크와 맞서 대결한다. 탱크가 발포한 포탄은 마틴 대령을 산산조각 내었다.

포로의 증언으로 후에 행방불명된 연대장이 구성동 길가에서 산화한 것이 확인되었다. 한국전쟁 첫 연대장 전사였다. 7월 8일 제34연대 제3대대 포위를 풀고 후퇴를 돕는 도리티고개 포병지원 폭격은 천안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다.

7월 8일 밤 10시까지 모든 제34연대 병력은 129명 전사자와 168명 포로를 남겨 두고 구성동 거리를 지나 도리티고개를 넘어 소정리, 공주로 철수한다. 7월 8일 밤 천안은 인민군이 점령한다. 9월 25일 천안이 수복되기까지 인민공화국 79일이 시작된다.

천안읍사무소(현 동남구청 회의실) 회의실에 구금됐던 168명 미군들은 북쪽으로 이송됐다. 인민군에 점령된 천안은 79일 동안 몸살을 앓게 된다. 우선 인민위원회와 인민군정치 보위는 우익인사들을 검거하여 천안읍사무소 회의실에 감금한다.

7월 1일은 사회적기업의 날이다. 이윤만 쫓는 기업의 한계를 넘어 더불어 사는 경제를 모색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2007년 사회적 기업육성법 제정 후 인증 받은 사회적 기업은 1,000여 곳을 넘어서 사회적 기업이 한국사회에서 시민권을 얻은 셈이다.

충남도내에는 사회적 기업이 139곳(인증 66곳, 예비 70곳)과 마을기업 96곳, 협동조합 288곳이 있다. 2016년 2월 19일 현재 충남 사회적 기업협의회는 사회적 기업들은 투명한 재원사용 및 경영정보공개, 정직한 기업운영, 직원 인권존중, 좋은 일자리 창출, 윤리적 시장 확산, 사회적 가치 확산 등 8대 과제 실천을 선포했다.

7월 둘째 주 수요일은 정보보호의 날이다. 디지털문화시대에 국가와 개인의 정보에 대한 보안인식을 강조한다.

7월 7일은 도농교류의 날 법정기념일이다. 도시와 농어촌간의 교류를 촉진해 농어촌의 사회, 경제적 활력을 증진시키고, 도시민의 농어촌생활에 대한 체험과 휴양 수요를 충족시킴으로써 도시와 농어촌의 균형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7월 17일은 제헌절이다. 헌법은 주권자인 국민이 만든 공동의 약속이고 헌법이 국민의 권리를 지켜주는 법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헌법은 국가에서 최고의 근본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고의 법이자 인간의 존엄이라는 최고 가치를 명시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은 6.25전란 휴전협정 조인이 체결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유엔이 추진하는 휴전을 반대하여 전 국민 휴전 반대 데모와 북진통일을 주장하였다.

휴전은 곧 영원한 남북분단이며 민족통일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국군만이라도 계속 북진하여 국토통일을 이룩하자는 것이다. 1950년 11월 24일 중공군 참전에 이어 3년 동안의 지루한 전쟁을 참전국들은 진저리를 내었다. 끝내 유엔은 휴전협정에 조인하고 휴전선을 중립국에게 감시를 맡긴다. 북한이 도발한 6.25전쟁은 3.8선 분단을 휴전선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는 3년 동안 인명피해 실상이다. 천안지역 민간인 사망자는 폭격사망 95명, 좌익측 78명, 우익측 52명 그리고 정부기록 명단에 나타난 학살자 64명(전국 6만 명 중), 납북자 282명(전국 8만 명 중)이며 이는 충남 천안이 전국의 피해규모에 비해서 가장 적은 수의 학살 희생자와 납북자 인명피해 실상이다.

또 6.25전란 전사자는 국군 257천명, 유엔군 15만 명(미군 4만 명), 민간인 사망자 245천명, 양민학살 13만 명, 민간인 행방불명 30만 명, 피난민 700만 명, 전쟁고아 10만 명, 전란 미망인 30만 명, 인민군 전사자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이다.

7월 무더위는 6.25전란 동족상잔 가슴 아픈 역사를 연상하는 한 달이다. 서로 주고받은 깊은 원한의 상처를 용서와 화합 사랑으로 뛰어 넘어 자유민주로 민족을 평화 통일하여 완전독립을 완성하는 시대정신을 발흥하자. 자유통일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6.25는 전쟁이 아니다. 전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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