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문의 날’ 독자 여러분께 사죄합니다

기사입력 2023.04.07 12:51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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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파성 보도·‘복붙’·지자체장 일그러진 언론관, 지역언론 존립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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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4월 7일은 예순 일곱 번 째 맞는 ‘신문의 날’이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천안신문] 오늘, 즉 2023년 4월 7일은 예순 일곱 번 째 맞는 ‘신문의 날’이다.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일을 기려 기념해 오고 있다.

     

    지역 언론 종사자로서 이 뜻 깊은 날에 독자 여러분께 격려와 축하를 받아야 하지만, 지역 현실을 돌아보면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먼저 지난 5일 오후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선 허위사실 유포로 재판을 받는 박경귀 아산시장의 4차 심리가 열렸다. 이날엔 아산에서 활동하는 지역신문 A 기자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A 기자는 6.1지방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오세현 후보(당시 시장)의 부동산 매매관련 정보를 당시 국민의힘 박경귀 선거캠프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A 기자는 증인으로 출석해 “2018년 오 전 시장의 부동산 매매 사실을 확인하면서 신탁사에 넘긴 날짜와 등기부등본 등기 날짜가 같아 허위매각이 의심됐다”고 진술했다. 

     

    A 기자는 진술 과정에서 박경귀 당시 후보와 수차례 전화통화와 문자 메시지를 전달한 사실, 그리고 김영석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박 후보(당시)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잘 도와드리겠다고 답했다는 사실도 말했다. 

     

    오세현 전 시장 측근을 통해 혹시 A 기자가 부동산 매매와 관련해 오 전 시장 측 입장과 해명을 요청했는지 물었다. 답은 ‘아니오’였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직 시장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재판을 받는 광경을 지켜보는 건 실로 힘들다. 여기에 현직 기자가 개입했다는 사실은 더욱 마음을 짓누른다. 

     

    적어도 기자라면, 만약 오 전 시장의 부동산 매매관련해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면 취재해서 기사를 써야 한다. 그리고 오 전 시장 측 반론도 반영해야 한다. 이건 취재와 기사 작성의 기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자는 공정을 잃어선 안 된다. 

     

    그러나 법정 진술을 통해 드러난 A 기자의 행태는 이 모든 기본을 무시했다. 더구나 A 기자의 행태는 박경귀 당시 후보 캠프가 문제의 성명서를 작성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는 분위기가 과열 양상으로 치닫던 시점이었기에 심각성은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당시 작성된 성명서로 인해 박 시장은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돼 법정 문턱을 넘나드는 중이고, 현직 기자로서 증언대에 서는 일까지 벌어졌다. 

     

    해당 기자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언론으로서, 본분과 역할을 망각한 점은 분명하고 따라서 같은 지역 언론으로서 무거운 연대 책임감을 느낀다는 말이다. 

     

    오타까지 ‘복붙’하는 언론, 지역주민 신뢰 잃다 

     

    박경귀 아산시장의 언론관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박 시장은 지난 1월 교육경비를 일방 삭감하면서 지역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학교운영위원 학부모 단체는 강하게 반발했고, 아산시의회 김희영 의장은 삭감 예산 원상복구를 촉구하며 천막농성까지 벌였다. 

     

    하지만 박 시장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커녕, 두 번의 기자회견을 갖고 기존입장을 재탕했다. 기존 입장에 허위가 있다는 점이 수차례 지적됐지만, 박 시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지역언론들은 박 시장의 말을 ‘따옴표’에 담아 여과 없이 실어 날랐다. 

     

    실제 ‘다음’, ‘네이버’ 등 포털을 검색하면 비단 교육경비 의제뿐만 아니라 시청 보도자료가 나올 때 마다 매체만 다를 뿐 똑같은 사진, 똑같은 제목의 기사가 줄줄이 나온다. 

     

    시민 반응은 어떨까? 기자는 일반 학부모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여러 경로로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불신은 대단했다. 

     

    한 학부모는 “기사는 많이 나오는데, 온통 박 시장 말만 ‘복붙’한 기사 투성이다. 학부모가 박 시장을 향해 뭐라고 한 마디 하면 되려 언론플레이에 이용당하는 분위기다”고 말하며 취재를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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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전 아산 탕정 테크노일반산단 토지주들이 박경귀 아산시장을 면담하면서 기자에게 취재를 의뢰했지만, 아산시청 공무원과 비서실 직원들은 몸을 던져 기자의 출입을 막았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한편 ‘신문의 날’ 이틀 전인 5일 오전 충남도청과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탕정면 갈산리 일대 토지주들이 박 시장과 면담했다. 토지주 대책위는 기자에게 이를 알리고 취재를 부탁했다. 이에 기자는 모두 발언만 배석하고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대책위와 아산시청 양쪽에 전달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기자의 취재를 원천 봉쇄했다. 심지어 비서실 직원이 몸으로 막는 일까지 벌어졌다. 

     

    갈산리 일대 토지주들은 믿었던 전임 대책위원장의 배신과 잇단 패소, 여론의 무관심 등으로 어려운 처지다. 그래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아줄 사람으로 기자를 지정해 취재를 의뢰한 것이다.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박 시장이 취재를 거부할 아무런 명분이 없다. 

     

    그런데도 박 시장과 아산시청 공무원들은 ‘사전 협의되지 않았다’, ‘사진 필요하면 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기자를 막아섰다. 이들이 도대체 그간 언론을 어떻게 대했길래 이러는지,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랬던 박 시장이 ‘신문의 날’인 오늘(7일) 오전 출입기자에게 “앞으로도 시민을 대변하는 언론, 독자에게 사랑받는 언론으로써 큰 역할을 기대하며 항상 행복이 충만하시길 바란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지역언론은 포털이 쏟아내는 뉴스 과잉으로 인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중이다. 이런 언론환경에서 출입처나 지자체장이 매일 오전과 오후 정해진 시간에 보내는 보도자료를 오타까지 복사해 붙이는 방식으론 더 이상 생존하기 힘들다. 

     

    여기에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권력에 심취한 일부 몰지각한 지자체장은 이런 언론 환경에 편승해 자신의 일그러진 독단 행정을 정당화하고, 지역 주민을 분열시킨다. 

     

    ‘신문의 날’ 지역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으로서 독자 여러분께 한없이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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