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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년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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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년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서산새마을금고 김정한 전 이사장

20190121153739_1394.png▲ 김정한 / 서산새마을금고 前 이사장
[천안신문] 1978년 1월 18일 45명의 서산시 동문1구 주민들이 1000원씩 출자를 해 4만5000원의 자본금으로 서동새마을금고를 설립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민들은 사설금융에서 고리대금을 이용하며 많은 피해를 봐야 했으나 새마을금고의 탄생은 저리로 필요한 돈을 융자받아 쓸 수 있게 돼 안전한 금고로 큰 환영을 받았다. 
 
당시 서산 동문시장에서 장사하던 김정한 청년도 새마을금고의 설립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서산시 지곡면 산골마을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가까스로 졸업하고 부모님의 농사를 거들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중고교 대신 4-H활동을 하면서 농촌지도자로 훈련을 받다가 군대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도성리에 있는 광업소에 경비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광업소가 곧 파산하면서 실직하고 말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서산읍으로 나온 그는 월부 판매원과 수금원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다가 지인의 소개로 동문시장에 들어와 구멍가게를 시작했다. 밀가루로 뽑은 국수와 잡화 등을 파는 가게를 하면서 그 무렵 탄생한 새마을금고는 그에게 필요할 때 사업자금을 저리로 빌려 쓰고 버는 대로 조금씩 갚아 나갈 수 있는 안전한 금융기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금고 설립 초기부터 참여했다. 서동새마을금고는 갈수록 호응하는 주민들이 늘어 눈덩이처럼 규모가 커지면서 1981년 자산 1억 원을 돌파했다. 1982년 1월 김정한은 서동새마을금고의 감사를 맡으며 일찍부터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정연옥 이사장은 그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그에게 직원으로 들어와 함께 일할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그때 금고의 형편은 시장 구석에 얻은 조그만 단칸 사무실에다 박봉이어서 그리 탐낼 만한 직장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의 아내가 극구 반대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모험을 각오하고 서동새마을금고에 입사를 했다. 1982년 8월 사무장을 맡았던 그는 그 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그해 12월 5억 원으로 살림을 5배나 불려놨다. 1985년 1월 그는 전무로 승진했고, 1993년 이사장으로 선출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서동새마을금고 설립 30주년을 맞이한 2008년에는 회원 2만6000여 명에 총자산 1489억 7100만 원, 공제 계약고 1079억 원 5400만 원으로 대전충남지역에서 최상위 경영실적을 냈고, 4년 연속 전국 최우수 금고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설립 40주년이었던 2018년에는 5만4000여 명의 회원에 6000억 원의 자산을 달성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가 시중 제1금융권과도 나란히 어깨를 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 수 있었던 경영비결은 차별화된 서비스에 있다. 파출수납제도, 시장순회 환전조 운영 등 회원들과의 유대를 강화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직원들이 생업에 바쁜 상인들에게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발로 뛰며 서비스를 하니 회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일반 은행들과 달리 오전 8시에 개장해 오후 6시까지 아침에 1시간 더 늘려 근무하고 토요일과 휴일에도 문을 열어 ‘고객우선주의 서비스’를 실시한 적도 있다.
 
그는 대외적으로도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중요한 자리에 올랐다. 2006년 새마을금고 중앙회 부회장, 2008년 새마을금고 대전충남지부 회장을 맡아 새마을금고의 위상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바르게살기운동 서산시협의회장, 국제로타리 새서산클럽 초대회장을 지내며 지역사회 봉사활동에도 앞장섰다.

20190121153615_2057.jpg▲ 2018년 가을 백두산 정상에 선 김정한 전 서산새마을금고 이사장
 
1993년 그가 이사장을 맡았던 첫해에 본점을 신축한 일을 가장 보람있는 일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는데 지역사회를 위한 환원사업으로서 당시로서는 매우 생소했던 여성대학을 개강했다.

국악, 서예, 공예, 한문, 체조, 스포츠 댄스, 노래교실 등의 강좌를 마련하자 매년 100~500명의 수강생이 몰려와 지역사회에서 문화센터 구실을 톡톡히 했다. 그 무렵 회원들을 위한 취미교실로 개설한 등산반 동아리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거의 매주 주말마다 인솔자가 되어 산을 다니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지금까지 전국의 산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등산 매니아가 되어 버렸다. 지금 77세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등산을 통해 다져진 몸은 아직도 청춘이다.
 
2019년 1월 19일 서산새마을금고 40년지기 김정한 이사장이 명예롭게 물러났다. 이날 이취임식에서 후배에게 물려주고 자연인으로 돌아간 김 전 이사장은 지난 일을 회고하면서 모든 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며 “고맙고 행복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40년 전 새마을금고를 설립할 때와 지금의 너무 발전된 모습을 비교하면 고맙고 행복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회원들이 잘 따라 주셔서 아무 사고 없이 대형금고로 만들어 놓고 퇴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임직원들이 잘 따라줘 고맙고 행복합니다.”
 
초창기 서산시 동문동에서 시작하면서 지명의 앞 글자를 따 ‘서동새마을금고’로 지었던 점포이름은 2011년부터 ‘서산새마을금고’로 바뀌었다.
 
김 전 이사장은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등산과 여행을 하면서 보내겠다며 소박한 노후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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