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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㊶ - 일본 ‘유아사 레이미’[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항공기 승무원, 교사, 경찰관, 변호사, 의사 등 여러 꿈을 꾸었다. 하지만 나이를 들수록 세계의 역사나 관계, 정치, 언어 그리고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게 생각 하게 된 큰 이유의 하나가 우리 가정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다문화 가정으로서 아버지가 일본 분이시고 어머니가 한국 분이시다. 내가 어릴 때는 지금 같은 시대가 아니었다. 그때 한국과 일본은 관계가 안 좋아서 서로가 서로를 정치적이나 역사적으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 친한 친구들도 한국을 싫어했기 때문에 만약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나를 싫어할까 봐 해서 내가 정말 사랑하는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 했던 것은 물론이고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피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일본과 한국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아무 변함이 없었고 언젠가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왔다. 최근에는 한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가수나 드라마가 일본을 비롯한 세계 나라에서 주목과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한류의 영향 덕분에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는 고등학교 때에는 의료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공부에 시간을 썼다. 그러니 한국에 유학한다는 생각은 내 머리 속에는 전혀 없었는데 어느덧 한국에 유학 온지 벌써 8개월이 됐다. 어학원에서는 일본,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중국을 중심으로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수업도 한국교수님이 한국어로 가르쳐 주시고 친구들이란 얘기할 때도 한국어로 얘기 한다. 우리 교실에는 지금 6개국의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공통언어가 한국어라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수업 시간 이외 때는 자신 나라의 문화나 언어를 가르치면서 놀기도 하고 주말에는 밖에 같이 나가서 교류하기도 한다. 1년 전에는 외국인 친구가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는 한국에 와서 소중한 외국인 친구를 많이 갖게 되었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을 그들에게 배웠다. 지금 생각 하면 일본에 있을 때는 아주 좁은 사회에서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년에는 대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선문대 어학원에 다니면서 정말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알게 됐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의 하나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연마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고 새로운 사고를 갖게 될 수 있다. 즉 사람을 통해서 혼자 찾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장래 일본과 여러 나라를 맺는 가교의 역할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남은 어학원 생활과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꿈을 이룰 수 이도록 노력하고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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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㊵ - 남아공 ‘고옴시 연자 말리에 클리에’[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고옴시 연자 말리에 클리에’ 라고 한다. 2010년 한국 방문 후 두 번째 방문한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느덧 7개월이 됐다. 지난번 방문때는 내가 14살이었는데 벌써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혼자서 한국어를 공부하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음식, 음악, 문화, 언어 및 사람들이 나에게 너무 낯설었다. 그래서 한 3개월 동안 울기만 했다. 하지만 한국어를 같이 공부하던 내 옆의 외국친구들 덕분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내 한국 생활이 훨씬 재미있어졌다. 2010년도에 방문했을때는 한국어 공부를 마친 뒤 나는 2년 동안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나는 한국생활 중에서 중학교에 간 첫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학교에 오기 전날 밤에 너무 긴장해서 잠을 못 잤다. 친구들이 나를 좋아할지,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밤새 생각만 했다. 드디어 학교에 가는 첫날! 나는 집을 나서기 전에 거울 앞에서 자기소개를 여러번 연습했다. 여러 번의 연습 후에 자신감이 생기자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 가는 길에 나랑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궁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 봤다. 그것 때문에 내 자신감이 다 사라졌고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마저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 봤다. “집에 가고 싶다, 여기 있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따라오라고 해서 선생님 뒤만 따라갔다. 교실이 점점 가까워지자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자 떠드는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나는 자기소개를 했다. 자기소개 후에 친구들이 나를 보고 반가운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후로 친구들과도 잘 지낼 수 있었고 학교에 다니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다. 중학교를 한국에서 다닌 덕분에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더 쉽게 알 수 있었고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지금 생각만 해도 그 때가 생생하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4년 동안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남아공으로 돌아 가야만 했다. 무척 슬펐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왔다. 지금 한국에 있다는 것이 늘 감사하다. 나는 지금 선문대 한국교육원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고 행복하다. 그 뿐만 아니라 여기에 다니면서 많은 경험과 추억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봄 학기 때 체육대회에서 2등을 한 일. 또 BBQ 파티에서 우리 팀이 입상한 일 등 생각만 해도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여름 학기 때도 비슷한 활동을 했고 에버랜드로 간 문화연수는 정말 잊을 수가 없다. 또한 응급처치 경연대회도 참가했는데 응급처치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 경험은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에게 응급구조학과를 선택하게 되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학교 말고 내 일상생활도 재미있고 바쁘다. 내가 장학생이라 내 자유시간이 별로 없지만 시간이 있을 때는 마음껏 논다. 그때마다 친구들이랑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한다. 방학이 되면 바다에 가는 경우가 많다. 또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고 여행도 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 가고 싶지 않을 만큼 한국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가능하면 한국에서 평생 살고 싶다. 한국은 국토가 좁지만 한국 사람들의 마음은 매우 넓고 좋다. 가끔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었으면...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런 모습으로 한국에서 아주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다. 그리고 앞으로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된다. 지금은 한국어 능력을 더 향상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그래야 한국에서의 생활이 더 편리하고 즐거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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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㊴ - 베트남 ‘레티캄투’[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단풍이 창틀 옆에 떨어질 때 나는 한국에 왔다. 곳곳에서 다양한 나뭇잎이 빨강, 주황, 노랑 여러 색상으로 치장하고 화려하게 빛을 발하며 붉은 노을과 쌀쌀한 바람이 가슴의 깊은 구석까지 설레게 하는 계절이다. 첫눈이 내리고 봄꽃이 피고 장마철이 지나고 이 계절이 다시 왔다. 내가 한국에 온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1년 동안 한국에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이 창 밖의 낙엽처럼 많이 쌓였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베트남과는 다른 색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먼저 나는 한국인들의 음식 문화가 재미있다. 한국인들의 일상식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여러 가지 반찬을 곁들여 먹는 식사 형태이다. 예를 들어 김치, 잡채, 족발, 오이소박이, 시금치 나물, 두부조림 등이 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뜨거운 음식을 선호하니까 식탁 위에 보통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있다. 나는 더운 나라에서 와서 뜨겁고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데 한국 음식에는 거의 고추장이나 고춧가루가 있기 때문에 익숙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한국음식은 변화한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봄에 눈이 아직 녹지도 않았을 때 주꾸미나 꽃게를 먹는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건강을 위해 뜨거운 삼계탕을 많이 먹고 가을, 겨울에도 찬 음식과 과일을 많이 먹는다.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떡도 많이 먹는다. 또한 의자에 앉는 대신 학교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서 가족들과 같이 밥을 먹는 것도 좋아한다고 한다. 한국의 축제 중에는 외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축제도 많다. 봄부터 겨울까지 한국 곳곳에서 축제가 벌어지니까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한국에 올 때 관광객들이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너무 발달하니 한국인들에게 많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빠른 발전만큼 ‘빨리빨리’ 습관도 빠르게 형성된 듯 하다.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 한국 사람들이 200% 노력하고 부지런히 일한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친절하고 향학열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불우이웃이나 난민에게 무조건 신경을 쓰고 손길을 내민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한국인들은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옷차림이나 자동차 색깔이 비슷한 것 같다. 이제 겨울이 코앞에 다가왔다. 겨울을 잘 견디면 봄은 더 아름다울 것이다. 앞으로의 한국 생활 동안 겨울처럼 힘든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이겨 내서 더 발전된 나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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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㊳ - 일본 ‘고이타바시 나미’[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일본에서 온 코이타바시 나미라고 한다. 한국에 온지 벌써 8개월이 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추억을 쌓았다. 학교에서는 이벤트나 문화수업을 자주 하기 때문에 반 친구와 같이 한국 요리도 만들고 에버랜드에도 가고 바베큐를 하면서 친구들의 공연도 보고, 맛있는 고기도 먹는 기회도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느낀 것은 한국어를 통해 다른 나라에서 모인 많은 친구들과 언어의 벽을 넘어서 의사소통을 하고 소중한 추억을 같이 만들 수 있다는 행복이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만 살아왔지만 지금은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같이 한국어를 배우면서 많은 나라의 문화를 접하고 있고 여기서의 생활에 정말 만족한다. 학교에서도 소중한 경험을 해왔지만, 이번 여름 방학 때 정말 귀한 경험을 했다. 그것은 바로 ‘자전거로 한국을 건너다’라는 행사였다. 피스로드라는 그 행사는, 남한과 북한을 하나로 하자는 뜨거운 소원을 갖고 부산, 목포에서부터 임진각까지 자전거로 달리는 행사였다. 피스로드에 참가했던 9일 동안 나는 매일 매일 한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꼈다. 한여름에 자전거로 달리면서 긴 오르막길이 눈앞에 보였을 때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고,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지만, 맑은 하늘 아래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이 있는 한국이란 땅을 밟고 달렸던 그 감동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원래 하나였던 나라, 민족은 같은 나라, 이 둘의 나라가 하루라도 빨리 하나가 되어 손을 맞잡고 사는 날이 오는 것을 진심으로 바래본다. 나는 지금도 유학생활 중에서, 다음은 어떤 새로운 경험이 가다리고 있을지 정말 기대가 되고,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여기서의 생활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찾고, 내 시야가 넓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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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㊲ - 일본 ‘박동성’[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한국어에 대해 많이 관심이 있었다. 내가 한국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드라마나 한국 아이돌 그런 영향도 있었지만 제일 관심이 간 것은 한국사람의 정이었다. 아빠가 한국사람이고 일본에 있는 한국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 그 때 이야기를 많이 했던 친구의 정을 많이 느껴서 나는 여기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됐다. 한국에 와서 나는 많은 것을 했다. 벚꽃과 함께 사진을 찍거나 수업의 문화연수로 놀이공원에도 갔고 독도에도 갔다 왔다. 독도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독도에 대한 역사를 배웠다. 그리고 왜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 다투고 있는 지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독도가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의 사이를 나쁘게 하는 섬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한국어를 더 많이 배워서 독도에 대해 해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 천안에서 열린 흥타령 축제의 규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큰 축제는 처음 봤고 처음 느꼈다. 처음에는 불꽃 놀이만 보려고 흥타령 축제에 갔는데 더욱더 많은 감동을 받았다. 잘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학이니까 역시 공부도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한국 공부도 확실히 어려웠지만 한국에 오고 난 뒤의 공부는 더욱 더 어려웠다. 일본에서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해석하고 모르는 단어는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정도의 공부였다면 여기에서는 역시 한국이어서인지 어려운 단어와 대학에 갔을 때의 PPT 글 쓰기연습 등 많이 어렵웠지만 선생님께서 잘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잘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하는 것도 한국어이기 때문에 말하기 연습도 된다. 유학 오기 전에는 나는 매일매일 알바를 하고 밤 늦게 돌아와서 자고 아침에 학교 가고 또 밤에 늦게 돌아오고의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생활을 하니 자는 것도 늦어지고 일어나는 것도 늦어지는 악순환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밤늦게 들어오니 가족과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지고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후회를 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학와서 느낀 것인데 "가족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할 걸"하는 후회가 든다. 여기에서는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고 싶어도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안타깝다. 역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게 유학이다. 가족의 소중함, 과거의 자신의 생활습관을 돌아보는 그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한국사람과 더욱 더 이야기하고 싶다는 계기로 한국유학을 오게 됐는데 이 유학이 자신을 잘 보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니 나는 유학온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또 나 자신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와 아빠가 일본과 한국사람이어서 너무 좋다. 그 덕분에 두 개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고 두 문화를 깊이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공부를 하는 학생이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한국과 일본이 같이 공존할 수 있는 같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여기서 많이 한국 사람과 이야기하고 한국사람의 의견을 잘 듣고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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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㊱ - 일본 ‘타지츠 레이카’[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6년만에 다시 온 한국에서 생활한지 벌써 7개월이 되었다. 아버지가 한국사람이고 어머니가 일본사람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바로 한국으로 왔기 때문에 아기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나의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시절 까지를 돌이켜 보자면 약 14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많은 일도 있었고 힘든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었던 추억과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족은 물론이고 유치원을 다닐 때, 초등학교를 다닐 때, 중학교를 다닐 때 내 주위에는 항상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즐겁고 행복했었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학원에 가기 전이나 방과후 그리고 주말에 친구들과 모여서 밥을 먹거나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거나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일상이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같이 수다를 떨거나 같이 놀러 다니는 평범한 일상이 너무 좋고 행복했지만 갑자기 일본을 가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싫었고 어린 마음에 부모님에게 떼를 쓰기도 했고 울기도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철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 일본에 와서는 익숙하지 않은 생활에 적응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이 힘들어 했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과 응원을 받았고 전과 같이 밝은 나로 돌아가 친구들과 같이 재미있는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남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항상 마음속에서 ‘대학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니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자신의 전공이라는 것이 생기고 그것을 공부하는데 모국어가 한국어인 나에게는 일본에서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확실하게 정한 후 많은 걱정과 기대를 가지고 나는 올 3월에 선문대 한국어 교육원에 입학했다. 한국어 교육원에는 일본을 비롯해 베트남, 중국, 미국, 인도네시아 등 많은 여러 나라사람들이 재학하고 있었다. 선문대 천안캠퍼스는 한국이란 나라에 있지만 가끔 여기가 정말 한국인가 라는 생각이 들만큼 세계각국의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공부를 하는 곳이었다. 나는 봄학기부터 최고급이라는 반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같이 한국어를 배웠던 반친구들은 8개국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수업시간도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다른 언어를 아주 가까이에서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정말 새로웠고 재미있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을 때와는 또다른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또 시내에 나갔을 때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소리, 한국어로 적혀져 있는 간판, 어떻게 보면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이 나에게는 익숙한 것이었지만 예전에 살던 지역과 다른 곳이기 때문인지 옆에 있는 사람들이 처음 사귄 친구들이기 때문인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한국에 왔기 때문인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지금은 천안에서의 생활을 한지 7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여기에서 생활하는 모든 것이 익숙해져 있는 시기가 되었지만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과 새롭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것은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는 어떤 새로운 나날을 보낼지 궁금하고 기대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보다 더 성장해 있는 미래의 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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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㉟ - 일본 ‘이대영’[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저는 올해 3월 일본에서 온 ‘이대영’입니다. 어렸을 때 한국에 2년동안 살았던 적이 있지만 예전과 지금, 한국에 대한 느낌이 너무 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일본 문화가 저한테 익숙해 졌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에 왔을 때 나는 한국을 아니까 문화 충격을 받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이 있었고 무엇보다 일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한국의 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인상적이었던 세가지는, 첫째, 선문 어학원의 선생님에 대해서입니다. 선문 어학원의 선생님들은 다 친절하고 한국말을 아주 잘 가르쳐 주십니다. 또 일본에 있었을 때와 완전히 다른 교육 스타일이었습니다. 가끔 학생들이 힘들고 졸릴 때 선생님은 사탕이나 음료수를 주시는데 그런 경험이 없었던 저는 일본과의 문화 차이를 느꼈습니다. 두 번째, 한국 쇼핑몰에 1플러스1 상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보통 어떤 상품을 팔고 싶을 때 할인을 합니다. 1플러스1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한국은 주려고 하는 마음이 가득한 나라라고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한국에 계시는 할머니 집에 갔을 때입니다. 근처에 작은 어머니도 사시는데 저를 아이처럼 사랑해 주시고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시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을 텐데 저를 위해 영화관에도 대리고 가주시고 옷까지 사주셨습니다. 한국에는 내 자신이 힘들어도 그걸 잊고 남을 위해서 해 주려고 하는 희생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저는 소중한 그 사랑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의 깊은 정을 느끼면서 내 자신이 한국사람 같은 따뜻함을 가질 수 있으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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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㉞ - 우즈베키스탄 ‘다다버예브 압두라흐먼’[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한국까지 와서 한국어를 공부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한류가 우리나라 우즈베키스탄까지 들어와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생기며 한국드라마에 중독됐습니다. 제가 처음 본 드라마는 지금은 한국의 고전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한국 역사드라마 '대장금' 이었습니다. 그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성차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러한 감동을 뒤로 하고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래에 대해 한동안 고민하던 중 친구의 권유로 한국에 유학하기로 했습니다. 2017년 8월 31일 저는 드디어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 때 비행기를 처음 탔는데, 저는 처음으로 고소공포증이 있는 걸 깨달았습니다. 8시간 지속된 비행동안 얼마나 무서웠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건 안 당해 본 사람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겁니다. 마침내 도착한 한국, 인천 국제 공항. 고향에서도 한국어를 배워 본 적이 있고 어느정도 한국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천안까지 왔습니다.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낯선것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즈벡에서 몇년 동안 한국에 대해 보고 듣고 했던 모든 것들이 도움이되어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선문대 기숙사에 처음 온 날 너무 피곤했지만 정말 기뻐서 밤 12시가 넘도록 잠을 못잤습니다. 그 때의 기분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때부터 한국어를 즐겁게 배우고 있습니다. 이따금 힘이 들 때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따듯한 사랑 덕분에 모든장애를 극복하면서 생활해오고 있습니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도와 드리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제 생활비를 벌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물론 힘들었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모든 일에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년이 넘게 생활하고 있는 난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한국의 모든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려움과 고생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입니다. 이것을 통해 저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깨달음은 바로 이 세상에서 자신감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생활을 통해 ‘우리’라는 말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보낸 지난 일 년 동안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우즈베키스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그 길의 시작이 한국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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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캠페인] 천안의 문화재를 찾아㉒-충청남도 기념물 제104호 '직산 사산성'[천안신문]우리가 살고 있는 천안지역의 문화재로는 국보 1건, 보물 8건, 사적 1건, 천연기념물 2건, 도지정유형문화재 8건, 도지정기념물 13건 등 총 33건의 귀중한 문화재가 있다. 이에 천안신문은 이같은 귀중한 문화자산이 우리곁에 있음에도 자칫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소중한 우리 문화재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천안시 문화관광과 문화재팀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편집자 주> 직산 사산성(稷山 蛇山城) 종 별 : 충청남도 기념물 제104호소재지 :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동리 산10-4지정일 : 1997.08.05 직산 사산성은 직산읍 해발 176m 성산의 계곡을 감싸고 둘러쌓은 성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사산성은 흙으로 쌓은 성이며, 둘레는 2,947척이며 성안에 우물터가 1개 있다고 전하나 찾을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에는 5~6세기 전반의 백제나 고구려의 것으로 보이는 토기들과 6세기 후반의 신라계 유물에 속하는 굽다리접시(고배), 그리고 줄무늬 격자무늬를 새긴 기와조각 등이 발견됐다. 학계에서는 마한의 목지국이 쌓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문헌사 및 고고학상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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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캠페인] 천안의 문화재를 찾아㉝-충청남도 기념물 제101호 '홍대용 선생 묘'[천안신문]우리가 살고 있는 천안지역의 문화재로는 국보 1건, 보물 8건, 사적 1건, 천연기념물 2건, 도지정유형문화재 8건, 도지정기념물 13건 등 총 33건의 귀중한 문화재가 있다. 이에 천안신문은 이같은 귀중한 문화자산이 우리곁에 있음에도 자칫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소중한 우리 문화재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천안시 문화관광과 문화재팀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편집자 주> 홍대용 선생 묘(洪大容 先生 墓) 종 별 : 충청남도 기념물 제 101호소재지 :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 462-22번지지정일 : 1996.02.27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과학사상가인 담헌(湛軒) 홍대용(1731~1783) 선생의 묘소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작은 아버지 홍억을 수행하여 여러 학자들과 친교를 맺었으며, 서양 선교사들을 찾아가 서양문물을 보고 접했다. 이덕무· 박지원·박제가 등과 어울려 북학파를 형성하였는데, 북학파의 선구자로 특히 천문학에 관심을 기울여 자전설을 주장하였으며, 저서로는 『담헌서』가 있다. 묘소는 수신면 장산리에서 속창리로 통하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데, 묘의 앞에는 상석·망주석·비석이 서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담헌홍공대용지묘 숙인한산이씨부좌(湛軒洪公大容之墓 淑人韓山李氏咐左)'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김흥근이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1857년에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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