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1·2심 당선무효형 박경귀 아산시장, 법 앞에 겸손하라

기사입력 2023.08.27 20:42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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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소심 기각에 “전혀 수긍할 수 없다” 불만 표시 박 시장, 사법부 판단 존중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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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오전 대전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박경귀 아산시장. 공판 전 박 시장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천안신문] 박경귀 아산시장이 지난 25일 열렸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박 시장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인 대전고법 형사1부(송석봉 부장판사)는 오히려 "1심에 이어 이번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만 반복하고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잠시 공판 전 분위기를 되짚어 보자. 법원에 도착한 박 시장은 무죄를 자신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현장에 온 지지자들과 옅은 미소를 띠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선 여유마저 느껴졌다. 지지자들 역시 무죄를 예상했다. 한 지지자는 "꽃다발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여유는 즉각 사라졌다. 송석봉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은 5분 여가 채 되지 않았다. 

     

    그 순간 박 시장 표정은 굳어갔다. 선고가 끝난 뒤엔 한동안 피고석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어 법정을 빠져나가면서는 기자의 질문에 "(재판부 판단을) 전혀 수긍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재판부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미 박 시장은 1심에서도 법원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했다. 1심에서 벌금 1500만원 형을 받고 법정을 빠져나가면서 "추측과 추단으로 재판해선 안 되지 않느냐"며 재판부에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엔 '정의' 운운하며 대법원 상고의지를 밝혔다. 

     

    박 시장 입장에선 재판부 판단을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재판 결과에 따라 자신의 거취가 결정되기 때문에 박 시장으로선 적극적으로 항변해야 하는 처지다. 그리고 우리 법은 세 번의 기회를 보장해 놓고 있다. 

     

    그러나, 1심 판단이 잘못이라고 항변하려면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했어야 한다. 이를테면 자신의 주장, 즉 6.1지방선거 당시 상대였던 더불어민주당 오세현 후보가 원룸건물을 허위 매각했다는 주장이 허위가 아님을 입증하는 증거를 확보해 제출하면 요즘 말로 '게임 끝'이다. 

     

    그런데 박 시장 측은 추가증거를 제출하지도, 새로운 증인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지난 7월 19일 오후 열렸던 첫 공판에서 재판부가 피고인 신문에 응할지 여부를 물었지만 박 시장은 여기에도 응하지 않았다. 

     

    박 시장 측이 항소심 재판부에 낸 건 고작 변호인 세 명이 낸 항소이유서, 그리고 변호인 중 한 명인 이동환 변호사가 낸 항소이유 추가보충서 등 서류 네 건이 전부다. 

     

    여기서 1심 재판부였던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제1형사부(전경호 부장판사)의 판단을 살펴보자. 

     

    1심 재판부는 "허위매각 의혹을 제기한 보도자료·성명서가 작성·배포될 때까지, 의혹이 있는 원룸건물 매각과 관련해서 피고측(박 시장)이 보유했던 객관적인 자료는 해당 건물 부동산등기부등본과 신탁원부에 불과하고, 다른 자료를 확보한 정황은 찾을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혀뒀다. 

     

    그러면서 "앞서 본 자료는 보도자료·성명서의 주된 내용, 즉 원룸건물 매각이 허위라는 점을 인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적시했다. 즉, 박 시장이 별반 증거도 없이 허위매각 의혹을 제기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박 시장은 기자에겐 “다 확인했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사법부 무시 박 시장, 끝까지 밝혀내겠다는 정의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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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고법이 25일 오전 선고공판에서 박경귀 아산시장의 항소를 기각하고 당선무효형인 벌금 1500만원형을 유지한 가운데 박 시장이 침통한 모습으로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앞서도 적었지만 1심 판단이 잘못됐다며 항소했으면, 적어도 박 시장은 1심 판단을 무력화시킬 증거를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박 시장 측은 증거를 내놓지 않았고(혹은 못했고) 단지 기소의 빌미가 된 보도자료·성명서가 그저 오 후보의 부동산 허위매각 의혹제기였으니, 내용을 다시 살펴달라고 항변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는 적절한 근거, 그리고 적법하게 조사하고 채택한 증거에 따라 피고(박 시장)의 주장을 배척했다"며 박 시장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짜 심각한 건 이제부터다. 적어도 상황이 이쯤 됐으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현타'가 올 법도 하다.(‘현타’는 '현실자각타임'을 줄인 말인데,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자각함'이란 의미로 주로 쓰인다) 

     

    하지만 박 시장에게선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취재진 앞에서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끝까지 밝히겠다"는 결기를 드러냈다. 또 법원을 떠나면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도 남겼다. 

     

    끝까지 밝혀내겠다는 정의가 무엇인지는 박 시장 본인만 알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선출직 공무원이 1·2심에서 연거푸 유죄를 인정받았다면 적어도 사법부 앞에 겸허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지금 박 시장이 보이는 태도는 사법부는 물론 자신에게 표를 준 아산시민 마저 무시하는 행태다. 

     

    박 시장은 항소심 최후변론에서 “제겐 아산시장직이 소중하고 막중한 직책”이라고 호소했다. 아산시장직이 그토록 소중하다면 더더욱 사법부와 아산시민 앞에 겸허한 자세로 마지막 한 차례 남은 대법원 상고에 임해야 한다. 

     

    이게 선출직 공직자로서 상처 입은 아산시민에게 보여야 할 도리이자, 구겨질 대로 구겨진 본인의 체면을 최소한이나마 회복하는 일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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