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 박현경 씨 죽음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기사입력 2022.10.06 16:15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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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리보조원 사망사건에 책임 회피로 일관한 거대 물류기업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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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인 2020년 6월 천안 목천 쿠팡물류센터 구내식당에서 조리보조원으로 일하던 고 박현경 씨가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천안신문] 2년 전인 2020년 6월 천안 목천 쿠팡물류센터 구내식당에서 조리보조원으로 일하던 고 박현경 씨가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고 박 씨의 남편인 최동범 씨와 지역 시민단체는 사건 발생 직후 쿠팡과 식당운영권자인 동원홈푸드, 고 박 씨가 속했던 인력파견업체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고소·고발했다. 

     

    사건 발생 2년 3개월 째인 지난 9월 사법 처리 결과가 나왔다. 사건을 맡은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은 쿠팡과 인력파견업체를 무혐의 처분했다. 단, 천안지원은 식당운영권자인 동원홈푸드만 약식 기소 처리하기로 결론지었다. 

     

    검찰이 치밀한 증거분석과 법리 검토를 통해 이 같은 결론을 냈으리라고 보고 싶고 믿고 싶다. 그러나 이렇게 순진하게 받아들이기엔 부조리가 너무 심각하다. 

     

    고 박 씨는 락스와 오븐크리너 등 독성이 강한 약품을 몇 개 섞어 수백 명이 집단적으로 이용하는 구내식당 홀을 청소하는 일을 했다. 당시는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이었고 방역 당국이 위생과 방역을 채근하는 시기였다. 자연스럽게 업무연관성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쿠팡은 고 박 씨 사망사건 이후 줄곧 관련성을 부인했고, 유족에게 그 어떤 진정성 있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사에 불리한 보도를 한 기자에게 억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문제제기로 취하하긴 했지만, 특정 기자를 ‘찍어’ 거액의 손배소를 낸 건 ‘입막음’ 소송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고 박 씨 사망사건 책임을 두고서 관련 업체들끼리 벌인 책임 떠넘기기는 더욱 추했다. 쿠팡은 동원홈푸드에게 도급을 줘서 식당을 운영했고, 도급업체는 영양사 한 명을 빼고 나머지 인력을 인력파견 업체를 통해 채용했다. 

     

    그래서 고 박 씨의 사망사건에 대해 쿠팡은 자사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도급업체인 동원홈푸드는 직접 작업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이 같은 사례는 우리나라 노동 시장에 만연한 하청-재하청의 먹이사슬을 드러내는 생생한 단면이다. 

     

    심각한 건 이렇게 복잡하고 책임소재를 모호하게 만드는 먹이사슬로 인해 고 박 씨의 유족들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과연 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물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쿠팡으로선 법적 책임을 면했다고 안도할지 모른다. 그러나 쿠팡은 비단 목천 물류센터 사망사건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비정상적인 경영 행태로 지탄을 받아왔다. 정상적 경영윤리를 저버리는 행태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쿠팡은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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