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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천안지역의 설화를 찾아 ④ - 쌍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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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천안지역의 설화를 찾아 ④ - 쌍용동

[천안신문] 천안신문은 오랜세월 천안지역에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설화와 전설, 문화재, 인물, 민속과 민담, 마을유래 등 옛 조상들의 생활상이 녹아있는 각 지역별 고담을 연재해 선조들의 일상적인 문화와 삶을 엿볼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게 됐다.
이번 연재는 천안시 서북구문화원에서 장기간 인력을 투입해 각 마을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상세한 조사를 통해 발간한 ‘천안의 구비설화’의 저자 최상은, 김현주의 협조를 얻어 지역의 설화를 연재하게 됐다.
<편집자주>  
 
쌍용동 설화
 
쌍용1동주민센터전경사진.jpg▲ 쌍용1동 주민센터 전경
쌍용동은 총 인구 8만 명이 넘는 천안 최대의 법정동으로서 쌍용1동, 쌍용2동, 쌍용3동 등 세 개의 행정동으로 나뉘어 있다. 원래 이 지역은 미라리(彌羅里)·쌍정리(雙井里)·용암리(龍岩里)였는데 행정구역 통합과정에서 쌍정리의 ‘쌍’자와 용암리의‘용’자를 따서 ‘쌍용리’라 했다가 ‘쌍용동’이 되었다. 

천안시 서북구에 소속되어 있으나 봉명동에 접해 있는 일부 지역은 동남구 봉명동 관할로 되어 있다. 남쪽은 일봉산, 서쪽은 월봉산, 북쪽은 봉서산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동서로는 충무로가, 남북으로는 쌍용대로와 서부대로가 관통하고 있고 인근에 경부선 철도 천안역과 KTX 천안아산역이 있는 교통요지이다. 기존 주택에 비해서 아파트 단지가 월등히 많은 인구 밀집 지역이다.

천안시에서 서부지역을 개발하면서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일부 기존 주택가를 제외하면 예전 모습이나 전통 민속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인구가 많은 만큼 각종 편의·의료시설이 발달해 있고, 나사렛대학교 등 각급 학교가 요소요소에 들어서 있어서 교육면에서도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마을이다.

 
 
쌍용동 설화 ①
집 지킴이 구렁이
쌍용동, 2015. 7. 9. / 손경수(여, 71)
 
 
손경수.jpg
조사자가 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뱀이 집 지킴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운을 띄우자 집 지킴이 구렁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에는 (조사자: 네.) 지붕이 벼로 된 겨. (조사자: 아, 그렇죠.) 그러면 지킴이가 진짜 뱀, 그 안에 뱀이 있대요. (조사자: 아~, 그 지붕 안에~.) 네. (조사자: 아.) 그래서 지킴이라고 하는데 (조사자: 네.) 옛날에는 뱀도 조그마한 게 아니라 엄청 큰 뱀들이 (조사자: 구렁이.) 구렁이 같은 게 지붕 안 속에 있대요. 그걸 보고 지킴이라고 하는 거고, (조사자: 아.) 그걸 보고 지킴이라고 하는 거지. 진짜 구렁이가 옛날에는 지금은 초가집이 별로 없잖아.

(조사자: 그렇죠.) 옛날에는 초가지붕 올려서 집을 질라고 하면 거기에 진짜 구렁이가 항상 있대. 그걸 지킴이라고~. 근데 그게 사람 눈에 띄면 그 집안이 안 좋다는 거야. (청중 1: 주방에서, 주방에서 쳐다보먼 막 천장에 엉겨 붙고 했잖아. 수숫장 같은 거로 엮어갖고.) 그러고 옛날에는 아궁이에 불 때잖아요? 그러면 그 지킴이가 그 집이 망조가 든 집이면 어떻게 사람 눈에 왜 띄느냐, 우연히 누워있다가도 그 지킴이를 보여준대요.

(조사자: 아.) 왜냐하면 천장 안 한 집도 있잖아? 흙이로 서까래 해가지고 그냥 짓잖아요. 그러면 그 사이로도 구렁이가 보일 때도 있고~. 또 언제 보이느냐면. 아침에 여자들이 가서 불 때잖아. (조사자: 네.) 그때 아궁이에서도 그 지킴이가 나왔대. (조사자: 아.) 그러면 그 집안이 멸망을 한 대요. (조사자: 아~, 사람 눈에 띄면~.) 응, 그 지킴이가. 그래서 그 옛날에는 (조사자: 네.) 집에 지킴이 말하는 게 구렁이를 이야기하는 거 거든. 구렁이가 있대, 항상 어느 집이든. 그래서 그 지킴이는 여자들 중에서 아궁이에 불을 넣을라고 할 때 옛날에는 몸종들이 있잖아, 몸종. 머슴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보고 불을 때라고 했대, 처음에는. 옛날에는 잘사는 집은 소도 있고. 가마솥 걸어놓고 있잖아요.

(조사자: 그렇죠.) 그러니까 머슴들이나 몸종이 가서 불을 때라고 했대. 왜냐면, 여자들은 아래가 열려 있잖아. (조사자: 아.) 그래서 지킴이가 나와서 여자 아래로 들어간 적도 있대, (조사자: 아.) 옛날엔. (조사자: 치마가 열려 있으니까) 그렇지. 그렇지. 그라고 옛날엔, 지금은 팬티 입고 다 했지만, 옛날에는 이렇게 벌어진 거 있지, 왜. (조사자: 네.) 몸빼 같이 생겼는데. (조사자: 꼬쟁이.) 꼬쟁이 그거를 입고 불을 때다 보면 여기가~.

(조사자: 아.) 그래서 지킴이가 아궁이로 나올 때도 있대요, 불을 때면. 그래서 들어갈 때도 있대. 그래서 될 수 있으먼 남자 머슴이 아궁이를 불을 지피게 많이 되어 있었대요. (조사자: 먼저 남자가 지피고 그 다음에~.) 네. 그래야 피하거나 물리지 않지 여자들이 주로 앉아서 불을 때잖아요. (조사자: 그렇죠. 아궁이니까.) 그래서 지킴이는 옛날에 그 지붕을 했기 때문에 지킴이가 어느 집이든 다 있었대요.
 
 
쌍용동 설화 ②
부자 되려다 반지만 날린 이야기
쌍용동, 2015. 7. 9. / 정청자(여, 78)
 
정청자.jpg
평상시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는지, 쟁반 이야기가 끝나자 청중 중 한 분이 반지 이야기도 하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좌중이 웃음바다가 됐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구연을 계속했다.

반지는 내가 이제 (가슴을 두드리며) 결혼을 해 가지고 (조사자: 네.) 우리 시숙이 반지를, 다섯 돈짜리를, 반지를 사 줬는데, (조사자1: 오~.) (조사자2: 네.) 인제 결혼을 해 가지고, 이제 시댁을 왔는데 우리 큰 시숙은 서울에 살고 둘째 형부가, 둘째가 (조사자: 예.) 그랬는데 이제 둘째 집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 둘째 동서가 돼지를, (청중: 기침) (조사자: 네.) 사 가지고 와서 (조사자: 오~.) 키우면 (조사자: 네.) 앞으로 돈을 많이 벌인다고 (조사자: 으음.) 그래서 인제 반지를, 내가 그 반지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나 지금도 그 반지 같은 거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조사자: 네.) 반지를 빼 주면서 그걸 팔아갖고 돼지를 사 가지고 (조사자: 오~.) 오라 그랬어.

(조사자1: 네.) (조사자2: 으음.) 그러니까네 가서 저녁 때 시장을 가더만은 반지만 빼 갖고 팔아 갖고 돈도 안 가져 오고 (조사자: 음?) 돼지도 안 가져 오고 자기 쉐타만 하나 사 입고 돌아오더라고. (웃음) 그래서 내가 (조사자: 음.) 왜 돼지는 안 사왔냐 (조사자: 네.) 그러니까 다음 장에 사가 온대, 이 장에는 돼지가 좋은 게 없어서~. (조사자: 으음.) 그륵저럭 살다가 석 달이 돼 버렸던 거야. (조사자: 허어.) 그래 우리는 진주로 선생이 발령이 받아갖고, 그래 우리는 진주로 가 버리고 (조사자: 네.) 그란게 그러고 나서는 돼지도 안 사고, (조사자: 허어!) 반지도 잃어 버리고 그래버렸다니까.

(조사자: 어머!) (청중: 으음.) (청중: 소란해서 판별 불가) 우리 둘째 동서, (조사자: 어~.) 배포가 진짜 좋지. (조사자: 그러게요.) 에, 그래 지금까지도 내가 그 반지에 대해서 물어보지도 안 했어. (청중: 으음~.) (웃음) (조사자: 그런 일이 있으셨구나!) (웃음) (재미있는 대목을 반복해서 얘기하면서 좌중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쌍용동 설화 ③
대가족으로 시집 온 며느리
쌍용동, 2015. 6. 30. / 김순태(여, 84)
 
김순태.jpg
조사자가 구연을 유도하기 위해서 옛날 어려운 시절 시집살이가 어떠했느냐고 물어보자 형제 많은 집에 시집 온 얘기를 해 줘야겠다면서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사자: 시집 오셔서 어떠셨어요, 천안이 살기 어떠셨어요?) 아니, 옛날에는 사람 형제가 여럿이라 (조사자: 네.) 내가 또 한 마디 해 줘야 겠네. (조사자1: 그렇죠.) (조사자2: 네네.) (웃음) 나는 내, 내가 살아온 이야기.(조사자1: 네네.) (조사자2: 네에.) 나는 처음 시집 오니까 10남매 맏이여. 맏며느리였어, 내가. (조사자1: 히이.) (조사자2: 10남매요?) 여, 열 중의 하나. 맏며느리였어. 그런디 아들은 칠형제, 딸 삼형제.

(조사자: 네.) 그렇게 십남매거든? 그렇게 그렇게 살구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 할아버지까냥 계시더라구. (조사자1,2,3: 어우!) 그러니까 여, 열 다섯 식구서 살었슈. (조사자1: 네.) (조사자2: 우와!) 열 다섯 식구서 살어서 사는디 맨날 나는 밥만 해 주고 막 빨래 해 주고 맨날 그런 거만 해 줬지. (조사자: 아.) 시누, 시동상이 일곱이니 열이니 어떻게 그거, 다 밑으로 아홉이니, 다해서. (조사자: 놀라서 숨을 들이쉼) 내, 내가 제일 맏이니께 (조사자: 네.) 시동상, 시누가 아홉이여. 긍게 한 집이서 막 살았다구. (조사자: 그 때 연세가 어떻게 되셨어요?) 나는 22살에 시집 왔어. (조사자: 22살에.) 예, 그래서 그냥 그냥 계속 살었쥬. (조사자: 와아!) 살었는지 식구가 열 다섯 식구씩 되었슈.

(조사자: 아아.) 그래 갖고서는 살었는디 한 달에(카메라 셔터 소리) 쌀을 한 세 가마씩 먹었슈. 쌀을 세가마. (조사자: 우와!) 베는 같이 비구 일도 하지, 한 달에 몇 번 씩, 일도 하지. 사람 둬서 일도 하지 그러니께 쌀을 세 짝씩 먹더라구, 한 달에. 그러니까 그 농사 지어서 밥, 식구들 멕이기만 해도 그것도 아주 굉장히 대단했슈. 우리 시아버지가 그게 농사를 잘 지셨어, 그렇게. 그래서 논은 좀, 논 점 지기나 있었구. 그, 그래서 그 놈 농사 지어서 식구들 그냥 다 먹여 살렸어. 그리고 다 또 학교 가르쳤지. 또 집이서 놀면 안 되잖여.

(조사자: 네.) 그래서, 다 학교 가리치고 참, 그 때 옛날에 그 때, 어려워, 저 어렵진 않았지. 농사 많이 지으니께. 먹고 사는 건~. (조사자: 네.) 그때 참 힘들게 다 중학교 졸업 맞고 우리 아, 아들들은 고등학교, 대학까지 나온 사람도 있고. 그렇게 10남매 중에서 그렇게 살았어유. (조사자: 어유, 십남매!) 그렇게 살아서 아주 대농가 집에서 살아서 그렇게 살고선 한 인저 며, 한 십년 사니께 나도 인제 자식 낳고 나는 아들 둘 딸 하나 그렇게 삼남매 낳고서는 그냥 살었쥬. 살고선 인자, 인자 한 이, 이 삼년 있으면 시동상이 여이서 살림 내보내구. (조사자: 으음~.) 결혼해서 살림 내보내구 (조사자: 우와!) 시누, 시, 시집가, 시집 보내고 하고 나니까 한 이십년을 이렇게 하고 나니께 인제 내 자식들이 컸잖어.
 
(조사자1: 아하!) (조사자2: 아, 그렇죠.) (조사자1: 또~.) 그래 내 자식들 삼남매 다 (조사자: 네.)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조사자: 우와!) 키워서 다 학교, 대학교 졸업 마치고 그러고서 지금 이렇게 사는기여 그냥. (조사자: 몇 명을 그렇게 출가를 시키신 거에요?) (웃음) 아이고, 말할 수도 없지. (조사자: 오.) 이 년 만에 한 번, 삼 념의 한 번 썩 계속 출가시켰어, 아주. (조사자: 우와, 기둥 뽑히겠다. 뽑혔어.) (웃음) 그 때 생각하면 진짜 어떻게 살았나 싶어, 사람이. (조사자: 예에.) 열다섯 식구가 살았으니.

(조사자1: 그러게요, 와아!) (조사자2: 네에.) (조사자1: 어유, 진짜.) 그래서 나는 자랑이 그거밖에 없어유. (웃음) 내가 맏며느리 노릇했어도 (조사자: 네.) 내가 착실하게 잘 하고 해서 동네에서 다들 효부상도 타고, (조사자: 오우!) 자랑스런 어머니상도 타고, (조사자: 어우!) 그래갖구선 살았어. (계속해서 자식교육도 잘 시켜서 지금은 다 천안에서 살고 있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옛날 살던 것 생각하면 지금 사람들 일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했다.)
 
 
쌍용동 설화 ④
도깨비에 홀려 밤새 우물을 맴돈
쌍용동, 2015. 7. 9 / 김찬제(남, 73)
 
김찬제.jpg
호랑이에 물려 죽은 여인 이야기가 끝나고 광덕산과 태학산 일대에는 각종 짐승이 많았다는 얘기를 주고받던 중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기, 도깨비 이야기 좀 해줄까? (조사자: 아~, 네. 좋죠.) (웃음) 내가 겪은 게 아니고, (조사자: 네.) 우리 아버님이. (조사자: 아~ 네.) 옛날에 겪는 걸 내가 봤어. (조사자: 아~, 그거. 네 네 네 네.) 그게 언제 시절이냐머는 나는 유년시절이고 인저 아버님은 옛날 분이니께. 옛날 내 고향이 여기요. (조사자: 네. 아~, 천안에서~.) 여기서 태어났어, 난.

(조사자: 아~, 토박이시구나.) 여기가 고향인데 토박인데 옛날에 여기는 전부 이렇게 논 터였었어요. 논, 밭, 야산, 요렇게 되었던 터예요, 전부가. 그러니까 여기 이렇게 마을이 용암마을이라고 했던 덴데 옛날 이름이로 용암마을. 용암마을이 지역이 넓게 퍼져 있어서 나의 나의 집은 어디냐면 월봉산 밑에가 우리 집이었었어. (조사자: 아~.) 거기 한 10여 호가 살고 있었는데. (조사자: 네.) 큰 동네는, 원 용암마을 큰 동네는 이 쪽 저 7단지, 10단지 거기가 큰 동네가 한 90호가 살았었어. 용암마을이라고. 겨울이 되먼 옛날 분들이 할 일이 없잖아.

(조사자: 네.) 아버님이 큰 동네 가야 친구들이 많으니께 옛날엔 화투치기, 노름, 투전 같은 거, 뽑기 같은 거 많이 했다고. (조사자: 네. 그렇죠.) 그걸로다가 겨울에 세월을 보낸 겨, 할 일이 없으니께. (조사자: 네. 그땐 겨울에 할 일이 없으니까.) 겨울에 그거 하다가 집에 올라니께, 나와보니께, 겨울에 눈이 하얗게 무지하게 쌓여있어. 여기서 거기까지 갈라면 한 1km 정도 돼요, 거리가. 큰 동네에서 작은 동네까지 올라면 1km 정도 되는데 (조사자: 네.) 밤에 올라니까 눈이 쌓여서 길을 못 찾아.

(조사자: 네.) 그래서 인제 자주 다니던 길이니께 어름 잡아서 찾아오는데 중간쯤 오다 보먼 옛날 저 왜정시대 때 우물을 크게 파놓은 게 있어. 길옆에. (조사자: 네.) 커다랗게 우물을, 저장물을 파 놓은 게 있는데 가운데는 저 물이고 그러이께 좀 훤하고 물이 위에서 비치잖아. 눈하고 물하고 비치잖아 환하게, 그 길은 안 보여도. 그 저기 우물가 뚝만 보이는 겨, 이게. (조사자: 아.) 거기서 인제 완전히 속은 거지. 그게 도깨비불이라고 하는 거지. 물빛과 눈과 빛이 나니께. (조사자: 네.) 그게 도깨비불인 줄 알고서 환하니께 무조건 따라간 겨, 거길.

(조사자: 아.) 따라가서, 따라가서, 밤새도록 따라가야 저 우물만 뱅뱅 돌은 거지. 거기 빛이 위에서 거기만 환하니께. (조사자: 네.) 그게 도깨비에 홀렸다고 하는 거여. 날이 훤하고 하니께. 집은 저기서 보이는데 엉뚱한 데서 도는 거지, 뺑뺑. 집에 찾아오셔서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 밤새도록 나 저기 돌았다. 저기, 도깨비에 홀려서 저기 돌았다는 거여. (조사자: 네.) 그 다음에 눈 오머는 밤길을 안 돌으셨다고. (웃음) (조사자: 아~, 그때 경험을 하셔가지고.) 그때 도깨비에 홀렸다는 게 도깨비가 있다는 게 아니고 그렇게 헛보이는 거지, 사람 눈에. (조사자: 네. 그런 일이 많죠.) 도깨비가 실제 있겄어요? (웃음)
 
 
쌍용동 설화 ⑤
고생 끝에 행복
쌍용동, 2015. 6. 30. / 이상희(여,84)
 
이상희.jpg
간단하게 살아온 얘기를 하겠다며 짧게 구연했다.

(조사자: 근데 입장은 포도가 유명하잖아요?) 응 응. 입장 포도밭이 많지. (조사자: 어~.) 포도농사를 많이 지었지. 근데 나는 원래 재산이 없으니까 (조사자: 네.) 그냥 내가 이렇게 몸이로 벌어서 생활해서 애들 키우고 여기 살어, 살어라.
 
(조사자: 어~.) 근데 인제 지금은, 젊어서 고생했어도 (청중: 지금은 잘 살아.) 지금은 편하게 살아요. (웃음) (청중: 행복하게 살아, 행복하게 살아. 젊었을 때 애들들 가르키느라 일도 많이 하고 고생 많이 했어도.) 나는 딸 다섯에, 아들 하나. (청중: 본인의 구연 내용을 구체적으로 쓰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 (조사자: 입장에, 입장 사실 때, 옛날에 그 입장은~.) 입장은
 
(조사자: 그 어려울 때 그 사금 캐서, 많이 캤죠?) 입장이 옛날에 (청중: 금점했을 때.) 이 고속도로 길 뚫릴 때(조사자: 네.) 그 때 내가 자갈을 했어. (조사자: 허어~.)그 때는 몸이로 자갈해서 깨뜨려서 팔톤 차에다 싣고 그랬어. 그랬는디 그거를 해 가지구 애들하고, 그래두 그 자갈하는 게 돈벌이가 좀 됐어요. (조사자: 아~.) 그래서 그거 해 가지고 살다가 (조사자: 네.) 애들 다 키워가지고 천안으로 나와서 사는 거여. (청중: 지금은 잘 하구, 며느리도 잘 하구.) (조사자: 아~.) (청중: 맨 첫째 며느리가 잘 하니까 다 저긴 거야. 딸들도 잘 하고.) 긍께 늦게는 편안하게 살어유. (조사자: 으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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