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독립운동가 ‘조지 루이스 쇼’ 선생 선정

기사입력 2015.03.30 13:43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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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 4월 한 달간 쇼 선생 사진 등 관련자료 11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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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신문]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조지 루이스 쇼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4월 1일부터 개최한다고 밝혔다.
     
    4월 30일까지 한달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ㆍ6관 통로)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조지 루이스 쇼 선생 사진 등 관련자료 11점이 전시된다.
     
    쇼는 1880년 1월 25일 중국 복건성(福建省) 복주(福州)의 파고다 아일랜드(Pagoda Island)에서 아버지인 영국 아일랜드계 사무엘 루이스 쇼와 어머니 일본인 엘렌 오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0년경 한국의 금광에서 회계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됐다. 1907년 중국 안동현(현재 단동시) 영국 조계에 위치한 단동시(丹東市) 원보구(元寶區) 흥륭가(興隆街) 25호에 무역회사 겸 선박대리점인 이륭양행(怡隆洋行)을 설립했다.
     
    선생이 설립한 이륭양행은 김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국내와 중국 이동을 돕기 위해 회사 선박 계림호를 제공해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보호 지원했다. 특히 1919년 5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내와 연락 추진을 위해 쇼의 지원으로 안동 이륭양행 건물 2층에 교통지부 교통국(1919년 10월 17일 임시안동교통사무국으로 개칭)을 설치했다.
     
    쇼는 이륭양행이 일본 경찰의 치외법권 지역임을 적극 활용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ㆍ만주지역 독립운동 단체를 연결하는 안전통로와 국내 전진기지로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20년 선생은 한국독립운동 지원 사실이 드러나 일제에 의해 내란죄로 체포 구속돼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석방 이후에도 선생은 정의를 위해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적극 원조하겠다고 천명했다.
     
    1921년 1월 쇼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금색공로장을 받았으며, 이승만․안창호 등과 함께 안동교통사무국의 재 운영방안을 논의했다. 1921년 5월 김문규를 이륭양행 직원으로 채용해 안동교통사무국을 운영했으나 1922년 8월 일제 탄압으로 김문규가 체포되면서 안동교통사무국이 위축됐다. 선생은 1923년 상해에서 여운형ㆍ김구 등에게 독립운동을 적극 추진할 것을 촉구했으며 한국인의 안전을 위해 노력했다. 1931년 일제의 만주침략 이후 일본은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쇼를 탄압하자 1938년 이륭양행을 복주(福州)로 이전하면서 반일활동과 한국독립운동 지원이 중단되고 말았다. 1963년 정부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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