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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④ - 루마니아 '벤잘 비안카'[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리나라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저는 4개월전 루마니아에서 온 벤잘 비안카라고 합니다. 저는 4년 전에 처음으로 한국어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루마니아의 TV에서 방송했던 한국 드라마 ‘주몽’이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토목기사라서 처음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궁전의 아름다운 건축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첫 방송이 끝날 때쯤에 "이리 오너라!", "문을 열어라!", "마마" , "그게 무슨 소리냐?" 같은 대사가 귀에 남았습니다. 뜻은 몰랐지만 그 대사가 음악처럼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첫 방송이 끝나자마자 그 드라마를 찾아서 다 보았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다양한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한국에 빠져 들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드라마는 물론 한국 음악도 듣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소리가 분명한 발라드를 들었지만 얼마 후 케이팝이나 트로트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나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2년 전부터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대학에 다니면서 회사에서도 일을 했기 때문에 한국어를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한국에 왔습니다. 이제 한국에 온 지 벌써 4개월이 지났습니다. 날마다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가끔 벽에 부딪칠 때도 있습니다. 아직 어려워서 “그게 무슨 소리냐?”라고 물어보고 싶을 때도 많지만 매일 연습을 하면 나중에 한국어를 잘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앞으로 3년 동안 한국에 살 것입니다. 살면서 한국어 실력도 많이 향상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루마니아에 돌아간 후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어 6급을 꼭 따고 싶습니다. 앞으로 루마니아에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울 것입니다. 그날을 기대하면서 저는 오늘도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이리 오너라”, “문을 열어라” 이곳 한교원에 와서 공부한 한국어로 저의 새로운 미래의 문을 열겠습니다. 지금 제 인생에 하나의 목표가 된 한국어야말로 나의 보물이자 한국의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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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특집-②] 대한독립만세! 천안지역 만세 운동[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제99주년 3.1절을 기념하여 3.1만세 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고자 충남동부보훈지청의 협조를 얻어 천안지역 곳곳에서 발발했던 만세운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갈전면 병천시장 4월 1일 갈전면[지금 병천면(竝川面)]병천시장에는 약 3천여 명의 장꾼이 모여 대대적인 독립시위운동이 벌어졌다. [이 운동은 16세의 나이 어린 여학생 유관순(柳寬順)이 끼어 있어 세칭 유관순사건으로 약칭되는 것임] 이 운동을 개관하면 3단계로 나누어 기술할 수 있다. 첫 번째, 하오 1시경 약 3천여 명의 군중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기에 태극기를 달고 이를 앞장세워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를 누비는 큰 시위를 벌였다. 이에 헌병주재소의 적 헌병들은 주재소로 향하여 오늘 군중에게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고, 또 천안에서 헌병과 수비대가 급거 출동하여 발포와 총검으로 마구 찌르는 만행을 벌여 수10명의 사상자가 났다. 두 번째, 하오 4시경 사망자의 시체를 격한 군중이 주재소에 운반하여 갖가지 항의를 제출, 일부는 투석도 하고 철조망도 파괴하며, 소방기구도 마구 흩어 주재소장인 적 헌병 오장(小山)을 혼을 내 주었는데, 적은 발포로 응수하였다. 세 번째, 그 후 군중은 부근의 산과 시장에 모여 천안과 병천 간의 전선을 절단하고 면사무소와 우편소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이에 대한 상세한 경위를 살펴보면 당초 이 운동의 기획은 2계열로 이루어졌는데, 그 하나는 수신면(修身面)·성남면(城南面)민계이며, 이 계통은 수신면(修身面)의 홍일선(洪鎰善)이 발의하여 김교선(金敎善)·한동규(韓東奎)·이순구(李旬求), 성남면(城南面)의 이백하(李伯夏), 갈전면(葛田面)의 김상철(金相喆) 등의 20대 청년들이며, 또 하나는 동면(東面)의 조인원(趙仁元)·유관순(柳寬順)계로, 조인원의 아들 조병호(趙炳鎬), 유관순 아버지 유중권(柳重權), 숙부 유중무(柳重武), 조만형(趙萬衡), 수신면(修身面)의 김상훈(金相訓)·김용이(金用伊), 갈전면(葛田面)의 박제석(朴濟奭)·박봉래(朴鳳來) 등이다. ◈ 수신면과 성남면계 수신면과 성남면계는 4월 1일 병천 시장에 이르러 여러 시장 입구를 각각 맡아서 장에 모여드는 장군들에게 시장에서의 독립시위운동을 미리 당부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동면계(東面系)가 하오 1시에 만세운동을 시작하여 만세 소리가 진동하였으므로, 그때부터 시장으로 들어가 이들과 합류하게 된 것이다. ◈ 동면계(東面系) 운동 동면계(東面系)의 운동은 용두리(龍頭里) 지렁이 골 유증권의 딸인 유관순이 16세 소녀로 서울 이화학당(梨花學堂)에 재학중 3월 5일의 남대문 운동에 참가했다가 독립선언서를 몰래 가지고 내려와 동리 어른인 조인원[감리교 동면 속회장], 아버지 유중권, 숙부 유중무 등에게 보이고 서울의 정경을 자세히 보고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4월 1일 병천시장의 장날 거사키로 합의하였다. 병천시장에는 멀리는 충북의 청주(淸州)·진천(鎭川), 가까이는 천안군(天安郡)내 각면에서 장군이 모이는 곳이므로 천안 길목은 조병호(趙炳鎬), 수신면(修身面)쪽은 조만형(趙萬衡), 진천(鎭川)쪽은 박봉래(朴鳳來)에게 연락을 맡기고 밤에는 조인원이 속회장을 맡고, 유중무가 교사직을 맡고 있는 예배당에서 통지를 얻고 태극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3월 31일 밤 자정에는 병천시장을 중심으로 천안 길목[목천넘어고개]과 수신면 산마루, 진천고개마루에 내일의 거사를 알리는 횃불을 놓고 이튿날 아침 병천시장에 몰려갔다. 하오 1시경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조인원이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중은 이에 화창하여 만세를 소리 높이 불러 시장 안은 삽시간에 흥분의 도가니로 빠졌다. 그 동안 군중에게는 태극기가 나뉘어지고 군중은 열을 지어 큰 깃발을 선두로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때 적 헌병들은 기총(機銃)을 난사하여 유증권 등 사상자가 많이 나고 군중은 잠시 후퇴했다. 그런데 이때 급히 출동한 적의 천안헌병분대원과 수비대원들은 합세하여 발포하고 총검을 휘둘러 이날 도합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적어도 30명 이상이 났다. 하오 4시경 헌병에 의하여 시장에서 총검으로 좌복부(左腹部)와 머리를 찔려 빈사상태에 빠진 유중권을 아우 우중무가 업고 김용이·조인원·조병호·유관순 등이 뒤 따라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유중무는 두루마기 끈을 풀어 제치고 적 헌병에게 큰 소리고 항의하고, 조인원도 저고리를 벗어 버리고 주재소장(小山)과 헌병 상등병[湊谷]의 총부리를 잡아 제쳤다. 후퇴한 군중은 천안·병천간의 전화줄을 절단하고 전주 1개도 쓰러뜨렸으며, 갈전면 사무소와 우편소를 습격하고 부근의 산 위와 시장에서 사태의 진전을 주시하였다. 이때 경비하던 1명의 일제 헌병을 일시 납치했었다. 이날 순국한 이들 중에는 김구응(金球鷹)의 모자와 유관순의 부친 유중교, 그밖에 이모(李某)씨가 있어 특히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는데, 야만적인 왜적들은 흩어지는 군중에게도 등뒤에서 발포하여 총검으로 마구 찔러 그 참상은 말할 수가 없었다. 이때 김구응(金球鷹)이 적병에게 항의하다 총에 맞고 쓰러지자 적은 야만무도하게도 그의 두개골을 박살을 내고, 비보를 듣고 달려온 그 모친 채씨(蔡氏)가 아들의 시체를 안고 통곡하자 적은 그 노모마저 창과 칼로 찔러 죽였던 것이다. 적은 이 같은 만행을 감행하고도 이날 늦게 수 10명을 체포하였는데, 이들은 천안으로 연행되어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았다. 그중 조인원·조병호 부자, 유중무·유관순 숙질이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이로써 이들 가정은 파멸하였다. 유관순은 이날 부모를 잃고 본인도 옥고를 겪게 되었으며, 후일 공주 감옥에서 공주(公州) 영명학교(永明學校)에 다니던 오빠 유관옥(柳寬玉)도 만세운동으로 잡혀 와서 만나게 되었으니, 그 심정이 어떠하겠으며, 그녀가 옥중에서도 어윤희(魚允嬉)·박인덕(朴仁德) 등과 만세를 계속 불러 서대문 감옥에서 끝내 장독(杖毒)으로 1920년 17세 1기로 옥사하였으니 커다란 민족한(民族恨)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유언은, “일본은 망한다. 절대로 망하고야 만다”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날 의거에서 체포된 이들의 재판은 동면계(東面系)는 복심에까지 법정투쟁을 하고 수신(修身)·성남면계(城南面系)는 상고심에까지 이르렀다. ◈ 성환면 3월 31일 밤 성환에서 수천 명 군중이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크게 놀란 적은 경찰과 헌병이 총칼로 제지하고 나섰다. ◈ 환성면의 횃불시위 일자 미상 면내 각리에서 일제히 산에서 횃불을 올리고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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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특집-①] 대한독립만세! 천안지역 만세 운동[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제99주년 3.1절을 기념하여 3.1만세 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고자 충남동부보훈지청의 협조를 얻어 천안지역 곳곳에서 발발했던 만세운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목천면 보통학교 학생 의거 1919년 3월 14일 하오 4시경 목천보통학교의 학생 약 1백 20명은 교정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근처를 누비고 다니며 시위했다. 이로써 주동 인물 4명이 체포됐다. ◈ 전화선 방해 시위 3월 16일 군내(장소 미상)에서는 적의 전신을 방해하고자 전화줄의 양 끝에 약 5백 돈 중의 돌을 달기 위해 1발의 새끼줄을 매달아 적을 긴장시켰다. ◈ 입장면 양대·입장시장 3월 20일 상오 10시경 양대리(良垈里)시장에서 약 70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는 시위가 전개됐는데, 이들은 다시 하장리(下場里) 소재 입장시장(笠場市場)으로 향하여 약 6백~7백 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일방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일방 대한 독립만세를 소리높이 외쳐 일대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대한 경과는 이날 아침 광명학교(光明學校)[월리암 경영의 미국 미션사립여숙(女塾)]의 교사와 학생 수십명이 직산금광(稷山金鑛)의 광부와 부근 주민 약 70명과 함께 양대리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했다. 이들은 다시 약 3km 떨어진 입장 시장으로 만세행진을 벌여 도중에서 급보에 접하여 출동한 천안헌병대와 일대 충돌을 빚어 남자 40명, 여자 10명이 체포됐으나 일부는 입장시장에 이르러 약 7백 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며 일대 시위를 벌였다. 3월 28일 아침 7시 반경 직산금광회사(稷山金鑛會社)의 광부 약 2백 명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저지하는 일제 헌병과 충돌하면서 양대 헌병주재소를 습격하고 일제 헌병의 무기를 빼앗으려고도 하고 전화줄도 절단하는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 이때 8명이 체포되고 적의 발포로 6명이 부상하였는데, 그중 2인은 아깝게도 절명했다. 이에 대한 경위는 직산금광회사의 고용인 박창신(朴昌信)이 3월 25일 동료 안은(安銀)·한근수(韓根守) 등과 모의하고, 27일 박창신 집에서 태극기 다수를 만들어 동지로서 백학서(白學西)를 참가시켜 거사일로 28일을 택하여 입장시장으로 갈 것을 약속했다. 28일에 이르러 아침 6시 30분경 갱부(坑夫)교체시간에 갱부들에게 독립시위운동 전개를 권유하여 그 자리에서 대한 독립만세시위를 벌여 곧 입장 시장으로 행하였는데 도중 양대리 시장에서 적에게 제지당하자 여기서 피체자 석방을 요구하다 충돌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 천안면 3월 29일 천안 읍내에서 약 3천 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대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대하여 적의 천안헌병분대는 적의 수비대와 합세하여 발포하고 26명이 피검됐다. 이날 현장에서 주동인물로 이문현(李文鉉)·허병(許柄)·최오득(崔五得)·인시봉(印時鳳) 등이 체포됐으며 이들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이날 시위중 적 헌병들이 이들의 두루마기에 파란 잉크를 칠하여 뒤에 체포됐다. 이문현(李文鉉)과 허병(許炳)은 동일 하오 2시경부터 동 시장을 돌아다니며 집단된 군중에서 양손을 들어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장을 뛰어다니며 군중에게 만세를 부르게 하여 이들은 이날의 주동인물로 지목됐다. 최오득(崔五得)은 30~40명의 군중을 모아 놓고 격렬한 연설을 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 군중이 이에 화하여 일제히 만세를 불러 주동 인물로 지목됐다. 또 그는 처마 밑에서 보고만 있는 사람들에게도 만세를 부르게 하였으며, 인시봉(印時鳳)도 최오득과 함께 군중을 선동하여 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뛰어다녔다. 시위군중 가운데는 약 30명이 갓을 떨어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 풍세면의 횃불시위 3월 30일 풍서리(豊西里)를 중심으로 주변의 산 위에는 20여 개소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했다. 그중 약 2백여 명이 풍서리시장으로 시위행진을 하여 만세를 절규하며 시위를 계속했다. 적은 이에 대하여 발포로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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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③ - 콜럼비아 'Maria Camila'[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리나라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저는 콜럼비아에서 정부초청장학생(KGSP)으로 온 Maria Camila입니다. 우선, 선문대학교 한국어교육원에 계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특별히 그동안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담임 선생님들께 개인적으로 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온 것은 아주 특별해서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라고 우리 모두 그렇게 여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넓은 시각으로 다채로운 삶을 바라보며 서로의 문화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세상을 향해 활짝 열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에서 공부하는 모든 친구들이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서 아름다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여기서 생활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고마운 마음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인재가 되리라고 저 스스로에게 약속해 봅니다. 지난해 2017년의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정말 멋진 한해였기 때문에 저는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됩니다. 벌써 1년이 다 지났다니요. 요즘 친구들 모두가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맞아요. 시간이 너무 빠릅니다. 특히 한창 좋을 때 그래서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은데요. 인생은 정말 아름답지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지 모릅니다. 매일매일 수업도 들은 것 같아요. 정말 배움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삶은 실수도 하면서 무언가를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배우는 끊임 없는 학습 과정이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실수할까 봐 두렵습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두려워하고 있거든요. 시작은 항상 그렇잖아요. 보통 어떤 일을 시작할 때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순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미래를 행운의 손에 맡겨 보자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행운의 손이 어디 있냐고요? 그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의 손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참마음을 가지고 가세요. 여러분이 진실된 마음으로 하는 일들은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위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마음을 먹기만 하면 이 세상에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굳세고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능력자이거든요. 꾸준히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 봅시다. 우리를 위해, 우리를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사랑을 필요로 하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에서 바로 여러분과 함께 한 시간들이 제게는 정말로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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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② - 베트남, '응웬 티 히엔 지앙'[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리나라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저는 베트남에서 온 응웬 티 히엔 지앙(19세)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11월 29일 한국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한국에서 생활한지 두 달이 되어갑니다. 한국에 온 첫 날 한국날씨가 너무 춥고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한국은 풍경이 수려하고 문화도 독특한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한국의 다양한 문화 중에 가장 특별한 것은 음식 문화입니다. 한국 음식은 특별하고 기발합니다. 그리고 아주 맛있습니다. 각 요리마다 다른 의미와 조리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보물은 한국의 맛있고 다양한 음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저는 한국의 보물 같은 다양한 음식에 대해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첫 번째 음식은 떡국입니다. 떡국은 설날에 먹는 전통 음식인데, 천지만물이 새롭게 탄생하는 새해의 첫날에 흰 떡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먹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뿐만 아니라 떡국이나 송편, 미역국, 팥죽처럼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음식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음식의 보물 중의 보물은 김치입니다. 김치는 밥과 함께 한국 사람의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김치는 종류도 다양하고 김치로 만든 음식도 많이 있습니다.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김치전, 두부 김치 등 다 맛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김치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들었는데, 저도 벌써 김치의 매력에 빠져 버린 것 같습니다. 김치 다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한국의 음식은 길거리 음식입니다. 몇 년 전에 저는 베트남에서 유투브로 한국의 길거리 음식으로 보면서 ‘와~ 나는 언제 이 음식들을 먹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 오자마자 순대, 떡볶이, 호떡, 계란빵, 튀김 등 길거리 음식을 많이 먹었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여행 올 때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다양한 길거리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음식의 독창적인 특징은 다양한 계절 음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서 그 계절에 나오는 재료들로 다양한 음식을 만듭니다. 봄철에는 화전, 쑥떡, 쭈꾸미를 먹고, 여름에는 삼계탕, 감자두부탕, 콩국수, 냉면을 먹는데 이렇게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으면 건강에 좋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겨울에는 붕어빵, 호떡, 곶감, 무굴밥 등의 음식이 있는데 진짜 몸도 살리고 기분도 살릴 수 있는 음식들입니다. 한국은 정말 음식의 천국입니다. 제 고향 베트남에도 정말 맛있는 음식이 많이 있습니다. 제 꿈은 베트남 문화를 한국으로 가져오는 것인데 한국에 베트남 전통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식당을 만들어서 베트남의 맛있는 음식도 널리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베트남의 음식이 만나서 더 새롭게 멋진 음식문화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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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천안지역의 설화를 찾아 (29) - 동남구 봉명동[천안신문] 천안신문은 오랜세월 천안지역에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설화와 전설, 문화재, 인물, 민속과 민담, 마을유래 등 옛 조상들의 생활상이 녹아있는 각 지역별 고담을 연재해 선조들의 일상적인 문화와 삶을 엿볼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게 됐다. 이번 연재는 천안시 서북구문화원 관계자들과 상명대 한국어문학과 조사팀 협력으로 봉명동, 중앙동, 일봉동 지역의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뵙고 현장 인터뷰를 통해 입으로 구전되는 설화문학을 조사, 채록하여 발간한 '천안의 구비설화’의 저자 최상은, 김현주 교수님의 협조를 얻어 지역의 설화를 연재하게 됐다. <편집자주> 봉명동 유래 봉명동은 봉명동, 쌍용동 등 2개의 법정동으로 구성된 행정동이다. 동쪽으로는 성정동과 와촌동, 서쪽으로는 쌍용동, 남쪽으로는 일봉동, 북쪽으로는 백석동에 접해 있다. 전형적인 원도심 주거지역으로 6개의 초·중·고등학교(봉명초, 봉서초, 계광중, 서여중, 천안고, 천안여상)가 위치해 있는 교육 마을이고 순천향대 부속 천안병원 있어서 지역민들에게 많은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장항선 철도가 마을 남쪽으로 관통하고 있고 수도권 전철 1호선 봉명역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봉명동 경부선 철도 천안서부역사가 인접해 있고, 동서 연결 지하차도가 개통되어 동부와 서부의 교통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서로 차돌로·봉명로·성정로·백석로가 가로지르고 있고, 남북으로 봉정로·쌍용대로·서부대로가 관통하고 있어서 교통이 매우 편리한 마을이다. 또한 마을 서쪽에 위치해 있는 봉서산과 쌍용공원은 운동시설과 휴게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다. 봉명동에는 현재 약 8,800여 가구에 19,000여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마을 일부 지역에서는 대규모 재개발아파트가 건설 중에 있어서 앞으로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금점과 막거리 봉명4통 경로당 / 2017. 6. 22. 여기 동네 생긴 유래를 얘기해줄까? (조사자: 오, 네. 그런 거 좋아 요. 하하하하!) 금점이 뭔지 알아? (금접이요?) (조사자: 그게 뭐지?) (청중: 금캐는 데···.) (조사자: 아~, 네네 네.) 지금의 금광이라 그러지. (조사자: 네네, 금광.) 옛날엔 금점이라 그랬다고. (조사자: 금점~.) 금 캐는 데 보고 금전이여. (청중: 옛날에는 우리 형님께는 저것만 줏으러 다니대?) 여기가, (말소리 겹침) 여기가 천안 입장이 왜장 시대 때 노다지 나던 곳이여. (조사자: 노다지 맞아요.) 노다지. 노다지가 나서, 어디서 금을 빻았느냐면 (말소리 겹침) 요 바로 천고 옆이 다 금 빻는 데여, 여기. (조사자: 아, 금을 빻는다고 표현하셨구나.) 그럼, 여기가 금점할 때, 금 팔 때 (조사 자: 네.) 저 저런 데서 금점에 돈 벌로 와야 되잖어? 그럼 오도가도 할데가 없응께 여기 막을 치고 살았어, 움막이랑 해가지고. (청중: 막걸 막걸리 장사하고 살았디야.) 그래서 그렇게 쪼끔씩 쪼끔씩 살던 디가 막거리여. (조사자: 막거리~!) 소학교 다니던 일제 강점기 봉명11통 경로당 / 2017. 6. 22. 왜놈들이 우리 한국 사람은 좀,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왜놈들이 지독할 땐 굉~장히 지독해. (조사자: 어~.) 그렇게 교육을 잘 가르켰어. 왜? 나도 학교에서, 집에서 학교 가는 데 한 삼십분 늦었다고, 삼십분 을. 많이 늦었지. 왜정 때 학교 다녔으니까 한 오 리 됐어, 우리 집이.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한 삼십분 늦었는데 그리 오 리 되면 삼십분이면 충분히 올 텐데 뭘 해서 그렇게 늦었느냐, 왜놈의 선생이 우리 담임 이었었어. (조사자: 네.) 가와바다 센세이라고. 가와바다 선생이 (일본말 발음 불명) ‘너 나오라!’ 이거야. 맨발로 운동장에 삼십 분을 세워놨어. (조사자: 어?) 그것을 교장이 알아가지고, 다 얼었지. 교장이 알아가지고서 그 왜놈의 가와바다센세이라고, 그 이튿날로 딴데로 전근 보내 버리고 말았어. 내가 저 황해도 서은군 보은면 어 심산 소학교(일본말 발음 불명)거든? 그러니까 보통학교였다? 그 다음에 심상중학교로 변했어. 그렇게 6년 동안 내가 왜놈의 학교밖에 못 나왔어. (조사자: 네.) 그런데 지금 6년 동안 배운 거 가지고 다 해먹어. 뭐, 한문도 저런 거 지금 읽을 수 있어? 노인강령? 못 못 읽는다 이거야 지금! (조사자: 어.) 저, 중학교 나왔어도. (조사자: 네.) 나는 지금 척척 다읽는다 이거야. 지금 그쪽에 배운 거~. 근데 지금 자랑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 약소국가라 왜놈들한테 침략당해 가지고서, 또 우리 조상들이 그런 걸 우리가 어떡해. 그래가지고 정말 이렇게, 이렇게까지 (조사 자: 네.) 잘 살고 있는 게 머릿속에 들어있는 게 있어야 된다 이거야. 그러니까 자식 낳으면 가르쳐야 된다 이거야. (조사자: 네.) 곡식 알갱이까지 세서 걷어간 인민군 솔모루경로당 / 2017. 6. 22. 내가 지금 기억하고 참~사람이 공산당이 뭐가 나쁘냐먼 가알 왔는디 그때 가을까 인제 뭐 (조사자: 네.) 수수잎 패고 수수가 패고 호박 열고 하는데 호박을 한 포기에 몇 개가 열었나 보고 그 다음에 조사, (조사자: 음~.) 가을 가서 걷어 갈라구. 그러고 이 쑤 수수가 몇 이삭인디 요게 몇 개를 계산을 해가지고 고걸 싹 또 조사하고. 수수, 수수가 일 뭐 요거 한 이삭이 중간 잡어서 한 이삭이 몇 알갱이. (조사자: 네.) 그게 수확고 조사여. (조사자: 음~.) 그리고 요 한 평만 요게 몇 몇 이삭. 어 한 평 재가지고서 요게 몇 이삭. (조사자: 네.) (조사 자: 음~.) 이게 이제 그 숫자가 나오잖어? (조사자: 네.) 그니까 그 몇 알갱이에 몇 이삭에 (조사자: 음~.) 이 인저 나오니까 요게 몇 평인께 얼마다고서 걷어 가, 실제로. (조사자: 아~.) 어쨌거나 그 가을까 했으면싹 다 걷어갔지. 그거 그 나오나. 그 먹을 거나 반 주거나 말거나. 다 그런 것을 우리가 이렇게 젂으고 참 살고 참 생생하게 우리가 적으고 알고 인자 그런 식도 인민군 시대고…. 독사풀도 먹던 가난한 시절 신성은하수아파트 경로당 / 2017. 6. 22. 우리 우리 어려서는, 물론 나는 그런 생활 안 해봤지만, 먹을 것이 없어가지고 (청중: 그렇지.) 그 독사풀이라고 있어요. 독사풀을, 독사 풀이라고 이렇게 삥첨 나오는 풀이 있는디 그게 영글으면 그걸 털어다가 끼니를 연명하는 분들도 (청중: 어 어~.) 많았고, (조사자: 으음~.) (청중: 보리쌀!) 노릇노릇 할 때에, 그걸 이제 비어다가 (청중: 독사풀을 먹었어.) 쪄서, 이제 쪄요. 쪄서 말려서 그걸 (발음 불명) 쪄서는 그걸로 밥을 해먹었어. (조사자: 아~.) 그런 이제, 그런 일들도 있었고 하니께···. 독사풀을 먹으면서···. (청중: 소나무 있잖아요?) (조사자: 네!) (청중: 소나무 그거···.) 소나무 송지! (청중: 그 송골! 송골야 그걸 삐끼 가지고···.) 예, 맞아요. (청중: 송골 그거 삐끼가야가지고, 응? 그거 가지고···.) 예. (청중: 그거 쪄서 떡도 해 먹고···.) 응, 맞어. (청중: 그거 떡도 해먹었어?) 나 누렁이 떡 해먹었었잖 아. (청중: 산에 칡 있잖아요, 칡.) (조사자: 네.) (청중: 칡 그거 캐다가 뚜드려서 물에 쪄가지고 그걸 끓여가지고, 뭐 떡도 해먹고, 개떡도 쪄먹고 뭐, 뭐 다 해 먹고···. 칡. 옛날에요, 다 못 살아가지고 온갖 거 다 해먹고 살았어요.) 학생들은 이해가 안 가지. (조사자: 이름이 왜 독사풀이에요?) 독사풀이 라는 풀이 있어요. (청중: 독사가 아니야, 독새풀이에요. 독새풀.) 독새. 독새 독새. (청중: 독새풀.) (조사자: 아~.) 독새풀이라고, (청중: 논에 독새풀. 논두렁이나 어디···.) 나오면은 그게 이제 여물어. 그럼, 그걸 털었 어. 털어다가 그게 씨가 있어. 그걸 다 따서 그걸로 죽 끓여서 먹는 거야. 봉사의 눈을 뜨게 한 지렁이 신성은하수아파트 경로당 / 2017. 6. 22. 옛날에 엄마가 봉사인데, 지렁이탕을···. 저기 저 아들이, 저기, 엄마가 봉사인데 아들이 일을 나가가지고 있는데 미느리가 지렁이를 잡아가지고 엄마를 까 믹이고 그랬었데요. 까 믹여갖고, 그게요, 추억이돼 가고 엄마가 그거 지렁이를 자리 밑에다 옛날에는 자리 깔고 잤거 든요? 말라 놨어요, 지렁이를. 말라 놨다가 아들이 객지 나가서 들어온 뒤에, “아들아, 아들아! 우리 며느리가 이거를 해줘가고 너무너무 맛있어 가지고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살도 찌고 내가 잘 살았다.” 이렁께로 아들이, “엄마! 지렁이여!” 막 그랬대. (조사자: 하하하하하!) 엄마가 눈을 딱 떴대! 봉사가, 엄마가 눈을 딱 떴대. (조사자; 아~, 우와~!) (발음 불명) 미느리가 엄마를 고쳤는 거여. 봉사를 고쳤는 거여. (청중: 심 봉사가 심청이 덕에 눈뜬 듯이 그랬구만, 그려.) 눈이 홀리다 신성은하수아파트 경로당 / 2017. 6. 22. 나는 저기, 실제로 그 눈이 홀린다고 그러잖어? (조사자: 네.) 그런데 이제 우리 아들 지금 마흔다섯인디 걔가 세 살인가 네 살인가 말을 조금씩 할 때여. 우리 언니네가 광천 천북이거든, (청중: 으으.) 그 굴 많이 나는디. (청중: 으~.) 이제 걔를 업고서 저녁에 언니네를 갔어, 차가 늦게 떨어져서. 그랬는디, 언니네가 분~명히 여기였었는디 아니여~. 세번을 왔다갔다 그 가게 와서, (청중: 허허!) “아이고!” 우리 언니네가 유광종씨가 고등학교 선생이었었어. 그러고 우리 이안이 아빠가 한양에 있었어. (조사자: 오오.) 그때는 우리 이안이 아빠 젊었을 땐디 발령나서 우리 형부가 어딜 갔었나 어쨋나 내가 인자 거길 가느라고 우리 아들을 없고서 가는디, 밤~낮 대문 앞에를 세 번인가 네번인가 지나가도 언니네를 못 찾았어. 그 생각나네. 그런 소리를 하라 그러니께. (조사자: 으음~.) 못 찾아가지고, 가게 와서 세 번을 와서, “아이고! 나 좀 죄송하지만 나 좀 데려다 달라!”고. “요기 저기 저 집인 것 같은디 가보면 아니고 아니고···.” 그렇다고 그러니께, “허허, 이 아지매 큰일 났구먼!” 그러고 데려다주대? 데려다 주는디 그 집을 거긴디도, 밤~낮 대문 앞을 (청중: 허허.) 왔다갔다 하고 못 찾았어. 그게 눈이 홀려서 그렇디야, 그게. (조사자: 으음~.) 그래서 눈이 한번 홀려 봤어. (청중: 그게 도깨비여.) “세상에! 허허! 이 아지매 큰일 났구먼!” 하고 데려다 주더라니께. 그래서 한번 혼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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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① - 에티오피아 '하나 솔로몬'[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리나라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하고자 한다. 저는 KGSP 학생으로 멀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온 에쉬테 하나 솔로몬(20세)입니다. 저는 한국에 온 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20년을 더운 나라에서만 살아온 저는 자연 환경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한국이 독특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제가 경험한 재미있는 한국 문화를 두 가지만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젓가락 사용입니다. 음식을 손으로 먹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한국 사람은 젓가락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젓가락이 참 낯설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젓가락을 보았을 때 “이렇게 편리한 다섯 개의 젓가락이 있는데 왜 한국에서는 다른 도구가 필요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납작하고 무거워서 사용하기도 불편한 젓가락을 사용해서 먹어야 하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이 손가락이야말로 최고의 젓가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제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개밖에 안 되는 젓가락보다 3개나 더 많아 5개나 되니까요. 처음에 젓가락으로 먹어야 했을 때 저는 여간 당황스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젓가락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전 착한 사람이니까요, 하하하~ 이것은 한국의 음식 문화입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제가 젓가락 사용을 거부한다면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이상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저는 배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 연습하다가 제 손가락에 쥐가 나고 말았습니다. 짜증이 나더니 화가 나기까지 했습니다. 내 몸의 일부요, 사랑스럽기까지 한, 이 다섯 개의 젓가락을 다시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래서 쥐나는 것을 무릅쓰고 젓가락하고 싸웠습니다. 손가락 근육은 물론 팔뚝 근육까지 뒤틀림이 와서 마비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 그렇게 싸운 끝에 저는 드디어 이 불편한 젓가락을 제 몸과 일치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저는 지금 감사하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밥을 먹는 도구가 또 하나 생겼고, 한국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젓가락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저를 보고 한국 사람들은 감동하고 칭찬까지 합니다. 여러분, 젓가락은 저에게 인내심과 자신감, 그리고 자부심까지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무시무시한 시내버스 이야기입니다. 한국 승객들은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시내버스 안에서 손잡이조차 잡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문 앞으로 달려갑니다. 한국 사람들의 밸런스 감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뒤뚱거리지만 넘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놀랍죠? 저도 이젠 한국 사람이 다 된 것 같습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저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내버스는 매일매일 저에게 한국 생활 동안 긴장을 놓지 말라고 하는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 에티오피아는 한국 전쟁 때 한국을 돕기 위해 싸우러 온 16개 나라 중의 한 나라였습니다. 어려울 때 피를 나눈 형제국입니다. 형제국의 문화는 바로 나의 문화이기도 합니다. 한국 문화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거부하지 않고, 즐기고 사랑하다 보니 내 문화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한국 문화를 즐기고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지난 2일에 선문대 국어교육원에서 열린 한국어말하기 대회에 참가하여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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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변화하는 통일환경·교육과 활동의 방향[천안신문] 충남통일교육센터(센터장 선문대 황선조 총장)는 지난 15일 온양그랜드호텔에서 제20기 충남통일교육위원 워크숍 및 평가회를 개최했다. 2017년 한해를 보내면서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와 한국과 중국간의 사드갈등 등으로 동북아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이때 한반도를 중심한 동북아안보환경에 대해 전문가특강을 들어보고 이에 대한 통일교육위원들의 인식과 역할 등에 대해 전문적인 의견을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이날 강원대 박영호 교수(통일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의 "변화하는 통일환경과 통일교육위원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이 있었다. 박영호 교수는 (사)한반도포럼 공동대표, 현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오늘날처럼 국제문제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었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미국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안보환경을 맞고 있다. 미국은 물질적으로 미국에 이익이 되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본다. 미국이 세계경찰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지만 지금의 미국은 그렇게 하기엔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미국도 미국 우선주의의 길을 가고 있다. 중국은 중국으로서의 세계전략과 아시아전략이 있으므로 우리는 전반적인 전략구도를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시진핑은 마오쩌뚱이래 가장 권위적인 독재로 중국전역을 장악하고 있으며, 2039년에는 중국이 세계최강국이 되겠다는 핵심전략을 가지고 일대일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대일로는 경제전략이자 국제정치전략이며 안보전략인 것이다. 중국의 경제력이 커진만큼 군사대국으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미 동북아는 군비경쟁에 들어가 있다. 중국은 아편전쟁이후의 치욕의 역사를 극복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으며 그러한 태도록 패권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트럼프와 시진핑 회담시 한반도를 중국에 조공을 바쳤던 나라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교적인 수사에 현혹되어서 안된다. 최근 한반도의 사드문제를 보면 중국의 패권적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세계에서 군사적 긴장이 가장 심각한 곳이 한반도다. 세계적으로 강성지도자가 등장하고 있어 염려가 된다. 동북아 안보환경을 보면 지나치게 군사력경쟁 일변도로 나가고 있는데 북한이 핵무기를 강조하고 집착하는 이유는 자연상태에서는 남한의 경제력앞에 자연스럽게 붕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민을 심하게 통제하고 우민정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 미국친화적인 분위기에서 아시아 친화적인 분위기가 등장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정상적인 국가,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변신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경제, 군사적인 면에서 한국과 일본은 비교가 안되는 상태다. 힌국은 명분을 중시하고 일본은 실용을 중시하는 분위기이다. 일본은 국익을 위해서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사드문제를 놓고 볼 때 일본은 이미 더 강력한 사드를 2기나 배치하고 있는데 한국에 대해서 유독 반대하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한국을 미국중심의 질서체제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의도에서이다. 북한 김정은은 등장한 이래 당의 유일적 영도체제 강화한다는 명분아래 무자비하게 숙청을 하고 있다. 이른바 북한은 봉건적 유교사상이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는 공포정치를 통해 체제를 안착시키고 있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미사일발사를 시작했고 핵무기개발을 진행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에 너무 속아왔다. 북한의 실상을 바로 알고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아무리 북한을 고립시키려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는 절대로 북한을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을 제대로 제재하고 효과가 나타나게 하려면 2년은 지속적으로 재제를 해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북한경제는 어렵지 않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4대원칙중 전쟁을 절대 불가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으로부터 결정적인 위기가 포착될 경우 미국은 국구과 중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우리의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은 어떻게 전개해야할 것인가? 그것이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해서 너무 의존하고 있다. 박흥순 사무처장 지금까지 박영호 교수께서 좋은 강의를 해주셨는데 이에 대한 질문이나 의견을 개진해 주시기 바란다. 미국과 중국의 파워게임속에서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영호 교수 예전에 클린턴 정부시절에 북한공격에 대한 얘기가 많이 거론되었는데 그때는 그때가 최악의 상태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하여 지나치게 희망적으로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류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핵을 포기한다면 그보다 더 큰 것을 쥐어주어야 하는 데 실질적으로 그러한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을 절대로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핵을 억제할 수 있는 억제력을 구비해야 한다. 미국의 억제력에 일방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주국방에도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전략적으로 북한에 대해서 핵을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핵억지력을 확실히 갖는 입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전략자산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은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지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확실한 핵억지력을 갖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할 것이며 그것이 현실적이다. 이제는 교류의 원칙을 확실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 북한과의 교류를 위하여 명분도 지키고 원칙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흥순 사무처장 미국의 파월 전합참의장은 북한이 선제 공격하면 미국이 공격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은 멸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미국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김경성 통일교육위원 남한에 탈북자가 3만명인데 이들이 북한에 알게 모르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결국은 북한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제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핵에 관련해서는 북핵이 남한에 대해 위기요인이 되긴 하지만 전세계 대한 위협이기도 한다. 차라리 북핵을 폐기하는 것이 쉽지않기 때문에 융통성있게 정세를 해석하는 것은 어떨까? 사실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미군을 파견하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가 동북아에서 균형자역할을 하는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박영호 교수 미국과 한국간에는 쌍방간 이익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후 세계경찰국가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인데 지금은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쌍방간 교환관계를 갖는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중관계도 중요하긴 하지만 동맹국인 미국과 다른 것은 한국과 중국간에는 신뢰할 수 있는 과거가 없다는 것이다. 동독과 서독간 교류를 보면 한번도 공짜로 준 적이 없다. 서독이 동독에 차관을 줄 때도 항상 상환조건을 명기해서 지원했다. 이처럼 교류협력에는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동독이 행위를 했을 때 도움을 주었다. 인도적 차원에서 주는 것은 좋지만 일반적인 상거래관계를 유지하면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재범 통일교육위원 “27.432m” 야구선수들이 타석에서 베이스에서 1루까지 가는 거리를 의미하는데 통일교육이나 통일운동에도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변화하는 통일환경속에서 통일교육위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학생들의 통일에 대한 인식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지 않는가? 대학생들의 통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대학에서 통일교육 커리큘럼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을 보면 통일과 무관한 방향으로 후퇴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무겁다. 통일교육위원으로서 고민이 많다. 박흥순 사무처장 2016~2017년 2년간 가업을 지정 받아 열심히 해왔는데 금년 12월말부로 사업이 종료된다. 지금까지의 소회와 건의사항 등을 얘기해 주시길 바란다. 또 향후 발전을 위한 건의사항을 부탁한다. 센터는 사무처장과 간사 정도만 있으므로 사무처의 지원여력은 많지 않다. 이후 평가는 통일부에서 할 것이고 내년 2월에 재지정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통일교육위원제도가 어떻게 하면 활성화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해 달라. 정부차원에서 해야할 일과 위원들 각자가 해야할 일도 있을 것이다. 교육위원을 두배로 늘렸으면 한다. 교육위원과 자문위원으로 나누어서 교육위원은 자격을 갖춘 분들을 위촉하여 현장에서 교육에 직접 참가할 수 있도록 하고, 일부는 자문위원으로서 각계를 대표해서 자문을 하도록 하게 하면 좋겠다. 2018 통일교육센터 예산이 약간 삭감되었다. 박흥순 사무처장 사실 통일교육센터에서 포럼이나 워크숍 등으로 다양하게 접근하였으나 교육위원들이 잘 활용하지 못한 측면이 많다. 통일교육원 홈페이지에 보면 다양한 컨텐츠가 많이 있고 동영상 등이 있지만 이러한 내용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 앞으로 책자로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제공해줄 수 있도록 건의하겠다. 우선 인터넷을 활용해서 스스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진명희 통일교육위원 통일교육위원이라면 교육위원의 자격이 있는 분을 모셨다고 생각한다. 통일교육위원들을 지역별, 권역별로 나눠서 교육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5명정도씩 조를 편성해서 연구하도록 한 후 교육을 한다든가 교육대상을 섭외한다든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통일교육도 주입식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소규모로 통일 동아리형태로 만들어서 운영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소그룹위주의 자발적인 교육, 대학생멘토단 운영 등 윤주역 통일교육위원 통일교육의 필요성, 가치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 좋아할까 의문이다.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UCC대회 같은 것을 한다든가 다양한 문화적 시도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학생들이 통일에 대한 얘기를 하면 잘 듣을려 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교사에게 교육하면 교사에 대한 통일교육은 물론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사들의 인식개선이 우선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교육청 교육공무원을 대상으로 월례회 같은 기회를 활용하여 집체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2017년도에 통일교육선도학교를 33개 선정하여 지원해오고 있었는데 내년에는 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통일교육선도학교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나아가 교육청과 협약하여 통일교육 협력교육청 같은 것을 지정하여 함께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회원 통일교육위원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수준이 높다. 사이버연수를 7개 강좌를 들었다. 그래도 부족하더라. 통일교육위원 임명장을 받을 때, 사작 무렵에 오리엔테이션겸 워크숍을 하는 것이 좋겠다. 회원간 단합도 중요하다. 자긍심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자체조직을 만들어서 회비를 확보하더라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예를들면 삼락회와 같은 단체와 협조해서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또한 교육부에서 지원하는 통일교육시범학교를 대상으로나 통일교육선도학교를 대상으로 통일동아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하채수 통일교육위원 충남통일교육센터의 통일교육위원의 구성을 보면 대학 교수, 초중고 교사나 장학관 등 교육계 인사들이 주를 이루고 NGO단체나 기업과 언론사 관계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자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성원 모두가 역할을 강화할 때 통일교육 대상도 다양하게 할 수 있음은 물론 융복합통일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제는 통일교육을 정부차원보다는 민간차원에서 NGO관계자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자라나는 학생들의 통일에 대한 감수성을 함양하기 위하여 문화적인 접근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최문기 통일교육위원 통일교육센터를 다시 지정받는다면 초기에 단체 채팅방을 운영해서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체 카톡을 통해 소통을 하면 자연스럽게 의견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교육위원들의 집약된 의식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동기가 될 것이다. 센터에서 키워드를 정해서 의견을 확산해나가면 좋겠다. 박은종 통일교육위원 통일교육센터가 2년 정도에 걸쳐서 많은 일들을 해왔고 의미있는 일들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통일교육위원이 엘리트라 생각한다. 통일교육위원인데도 역할을 제대로 주지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 생각한다. 통일교육위원의 책무성, 참여가 중요하다. 일단 선발이 되면 초기에 발대식처럼 1박2일로 소통을 하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충남통일교육센터가 짧은 기간에 다양한 일들을 진행했다고 생각한다. 자부심을 가지고 할 필요가 있다. 통일동아리, UCC대회, 통일연날리기, 학샙체험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직원 월례조회시 강사를 모시는 등 다양한 형태로 하는데 그러한 계기를 활용하여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박흥순 사무처장 통일에 대해서는 전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간단한 것에서부터 통일비전과 통일을 위한 교육컨텐츠 등 다양한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안내하는 24시간 통일콜서비스센터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각 지역의 통일교육센터가 여건을 갖추어서 24시간 통일콜서비스센터도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쉬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정부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가능이라 생각한다. 충남통일교육센터가 개소한지 2년도 안되지만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많은 통일교육위원들의 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하며 감사를 표한다. 특히 충남도교육청과 충남도청 그리고 33개의 통일교육선도학교의 관계자께도 감사를 표한다. 아울러 그동안 함께 협력해온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세계평화여성연합을 비롯한 통일관련 NGO단체들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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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충남통일교육센터 통일교육선도학교 토론회[천안신문] 충남통일교육선도대학 담당교사초청 워크숍 및 연말평가회가 지난 7일 선문대 국제회의실에서 16개 중고교 30여명의 교장(감), 담당교사 및 충남교육청 장학관과 장학사가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충남통일교육센터(센터장 선문대 황선조 총장)에서 주최한 이날 워크숍은 지난 1년간을 평가해서 내년도 사업계획에 반영하기 위한 평가회를 겸한 워크숍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이날 토론회는 사회자 하채수 운영위원, 좌장 박흥순 사무처장으로 토론회가 진행됐다. 황선조 충남통일교육센터 센터장은 “분단상태에서는 대한민국이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통일은 대한민국의 숙명적 과제일 수 밖에 없다"며 "초중고에 계시는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들께서 많은 역할을 해주시기 바라며 그러한 통일교육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 충남통일교육센터가 역할을 하겠다"고 환영사를 통해 밝혔다. 윤학중 장학관은 “초중고에서의 통일교육에 대해서는 충남도교육청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선생님들간 통일교육을 위한 연구회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충남도교육청에서도 함께 협조하고 있다”며 “충남통일교육센터와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워크숍은 박병광 박사(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전략 연구실장)의 '동북아 안보환경과 국제정세' 특강이 있었고, 이미경 박사(통일교육원교수)의 '학교통일교육의 활성화 방안'에 대한 특강이 있었다. ▲박병광 박사는 “동북아 안보환경과 국제정세”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이 처해있는 안보환경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여 설명했다. 또한 동북아 정세를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구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면서 전략적 개념을 활용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미국의 중국포위 전략으로 일본, 대만, 호주, 인도, 싱가폴과 동맹 또는 지역연대를 강화하여 중국을 압박하려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러시아, 북한과 연대하여 대응하려고 하는 구도가 있기 때문에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너무 우리의 시각에서 봐서는 본질적인 접근이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또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으면서 도 결정적인 영향력은 행사하지 않는 것은 일방적으로 미국의 구도속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사실 한국에 설치하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는 적군 탄도미사일의 종말단계를 방어하는 미사일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설치를 반대하고 이를 빌미로 한국의 기업에 대해 경제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봐야한다며 미국과의 관계속에서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력적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중관계의 관리원칙은 상황이 어렵고 복잡할수록 기본에 충실하고 국제사회의 보편적 상식과 한미동맹에 기초하여 당당한 원칙을 견지해야 할 것이며 우리가 직면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갈수록 엄중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활적 벙어조치의 일환으로 선택한 것이 사드체계임을 강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은 사드문제로 인한 갈등상황 속에서도 중국와의 전략적 신뢰 및 사드너머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음을 일관성 있게 강조해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경 박사는 “학교통일 교육의 활성화방안”이라는 주제로 보다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통일방안을 모색하고 대상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통일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통일에 대해 너무 거대담론 위주로 거론되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부터는 통일과 내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Unification & I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학교 통일교육과 관련된 기관(교육부, 통일부, 교육청)간의 협조체제가 미흡하며 지역사회에서의 통일교육 관련 기관, 단체(지역통일교육센터, 통일교육위원 지역협의회, 통일관, 각급학교)간 유기적 네트워크가 미비하여 지역사회 차원에서 학교통일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의 지원과 연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앞으로 통일교육은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교육보다는 왜 해야하느냐에 대해 중점을 두고 통일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통일교육은 구체적으로 교육해야 하며 통일이후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며 통일교육은 지식과 정보의 습득보다는 체득, 페험위주의 학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Q. (박흥순 사무처장) 지금까지 한반도의 안보환경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았고 이러한 상황속에서 학교통일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전문가를 초청하여 강의를 들었는데 이에 대해 통일교육선도학교 선생님들의 고견이나 건의사항을 부탁한다. A. 김경성 교사(공주여고) 통일교육의 방안으로 자유학기제를 활용하자는 얘기가 있는데 실질적으로 중학교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입시위주로 진행하고 있는 고등학교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전국 고교중 윤리교과를 운영하지 않는 학교가 반 이상이며 이러한 고교는 선택과목인 윤리교육, 통일교육을 기회마저 없으며 인성교육법에 통일교육까지 포함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A. 임민주 교사(천안업성고) 미술교과를 맡고 있는데 인성교육 분야에서 통일분야를 담당업무로 하면서 통일교육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남북청소년간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면서 통일에 대한 얘기를 해나가면 좋겠고, 통일교육에 대해 성공적으로 잘 진행하고 있는 학교의 사례를 살펴보고 이러한 사례를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워크숍 기회에 그러한 선생님을 초청하여 시범강의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박흥순 사무처장) 통일교육선도학교를 선정하게 된 배경과 의미 등에 대해 설명하고 예산지원도 부족했는데 수고해준 33개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통일에 관련하여 정책적, 제도적인 문제들은 정부에서 정할 역할이지만 이를 전달하고 교육하는 분들은 바로 오늘 오신 선생님들이다. 일선교사들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선생님들이 수월하게 강의할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고 체험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일에 역점을 두고 진행하겠다. A. 주종한 장학사 통일교육선도학교를 모집하고 담당한 입장에서 일선학교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통일교육 관련 특별한 지원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모집하고 선정하고 현판식도 하였는데 이후 순회교육, 포럼초청, 체험교육 등을 해오긴 했지만 당초 계획에 미치지 못해 아쉬웠다. 만약 충남통일교육센터가 다시 선문대에서 운영하게 된다면 이 점을 감안해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부탁한다. 2018년도 통일교육센터가 재지정되면 예산 등을 충실하게 지원해주기 바라며 전문가 포럼 초청도 좋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일교육선도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DMZ 체험연수나 통일동아리 지원 등도 감안해주기 바람). 그리고 통일교육센터와 도교육청간의 역할분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A. 김용정 교장(금산 산업고) 오늘 전문가 특강내용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센터와 학교간의 협력에 있어서 일반적인 접근보다는 독일통일에서의 사례 등을 참고하여 특수한 컨텐츠를 제작하여 교육하고 활동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대학교수와 담당교사간의 공동연구나 스터디그룹 운영, 교재제작 등과 같이 구체적인 일을 같이 하면 좋겠다. A. 정종미 교사(서산 서령중) 통일교육주간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다. 아이들은 실질적인 진로를 놓고 접근하니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대학생이 중고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통일멘토링사업이나 강사파견, 주별 활동과 발표 등의 체험과 참여형 교육을 하면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학에서 통일동아리를 활성화하고 이를 멘토형식으로 인근 중고교에 지원하는 것은 아주 좋은 사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채수 통일교육센터 운영위원 오늘 참가하신 선생님들간에 통일교육을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통일교육센터와 교육청, 도와 시군과 같은 자치단체와 지역의 NGO단체들이 지역통일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지속적으로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고 통일이 되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에 대해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통일운동을 문화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흥순 사무처장) 오늘 평가회에서 대학에서 멘토단을 교육하고 구성해서 중고교 현장에서 대화하고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대학이 초중고교 선생님들과 함께 콜로키움이나 연구그룹을 만들어서 실질적인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통일교육선도학교 선생님들을 배려한 현장견학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이밖에도 좋은 의견들을 반드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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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특집-㊸] 천안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 조인원[천안신문] 천안신문은 8월 광복의 달을 기념하여 천안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의 위상을 세우고 시민들에게 호국정신을 되새기고자 천안 출신 독립운동가를 연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활동 사항 조인원(趙仁元)(1865~1932)은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은 2개의 계열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조인원은 동면계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한 인물이었다. 조인원은 유관순과 더불어, 4월 1일 아우내 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운동을 거사하기로 합의했다. 아우내 장터는 멀리는 충청북도의 청주·진천, 가까이는 천안군 내 각 면에서 장꾼이 모이는 곳이었다. 천안 길목은 조병호, 수신면 쪽은 조만형, 진천 쪽은 박봉래에게 연락을 맡기고 밤에는 조인원이 속회장을 맡고, 유중무가 교사직을 맡고 있는 예배당에서 통지를 받고 태극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3월 31일 밤 자정에는 아우내 장터를 중심으로 천안 길목(목천넘어 고개)과 수신면 산마루, 진천 고갯마루에 거사를 알리는 횃불을 놓고 이튿날 아침 아우내 장터에 몰려갔다. 오후 1시경 태극기와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조인원이 군중 앞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만세를 선창했다. 김구응을 비롯한 군중들은 이에 호응하여 소리 높여 만세를 불러 시장 안은 삽시간에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 동안 군중에게는 태극기가 나뉘어졌고 군중은 열을 지어 큰 깃발을 선두로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때 헌병들은 총기를 난사하고 총검을 휘둘러 도합 사상자가 수십 명 발생했다. 오후 4시경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헌병에게 큰소리를 쳤고, 주전자를 집어 던지고, 유치장 벽에 발길질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항의를 했다. 이러한 군중들은 헌병들의 총부리에 달라붙고 탄약갑을 잡아당기면서 격투를 벌였다. 이날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30명 이상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조인원은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 상훈과 추모 정부는 조인원의 공훈을 기려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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