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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탐방]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예당호 출렁다리’[천안신문] 충남지역의 언론문화를 선도하는 (주)씨에이미디어그룹에서는 분주한 일상을 뒤로하고 잠시 쉼을 찾아 떠나고픈 이들을 위해 본보 기자들이 직접 찾은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의 명소를 천안신문과 자매지 14개 매체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대한민국은 넓고 가볼만한 곳은 무궁무진하다! 일상을 뒤로 하고 잠시 떠나보자~ <편집자 주> 예산지명 1100년 기념으로 지난 4월 6일 개통된 ‘예당호 출렁다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 예당호 위로 다리의 주탑이 우뚝 솟아 있다. 주탑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국내 최장인 402m의 출렁다리가 펼쳐졌다. 주탑의 높이만 64m, 예당호와 봉수산을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 설치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를 체험하기 위한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출렁다리와 데크에 LED조명이 설치되어 야간경관이 뛰어나 야간에 출렁다리를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또한 출렁다리와 이어지는 5.4km의 산책길 ‘느린 호수길’ 조성되어 힐링에 최적지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개통 이후 이미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간 예당호 출렁다리의 인기로 택시는 물론이고 인근 음식점, 예산전통시장, 광시한우마을, 예당관광지 야영장, 의좋은형제 마을 등을 연계해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지역 경제활성화에 큰 효과를 거두며 예산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다. 기자가 출렁다리를 찾은 오후 9시경에도 야경을 눈에 담기 위해 찾아든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예산에서 30년이 넘게 살고 있다는 A씨는 "내가 살고 있는 예산이 이렇게 변할 줄 상상도 못했다. 침체되다 못해 삭막하기만 했던 예산읍이 요즘은 여느 관광지 못지 않을 정도로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걸 보니 너무 좋다“라며 ”예산을 찾는 관광객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라도 주변 환경정화 등 예산읍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멀리 부천에서 출렁다리를 찾았다는 B어르신은 “출렁다리를 건널때 무섭기는 하지만, 주위경관이 너무 좋아 무서움도 잊게 된다. TV에 나오는 모습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멋있다”고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출렁다리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이며 입장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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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탐방]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강릉 심곡 ‘바다부채길’[천안신문] 충남지역의 언론문화를 선도하는 (주)씨에이미디어 그룹에서는 분주한 일상을 뒤로하고 잠시 쉼을 찾아 떠나고픈 이들을 위해 본보 기자들이 직접 찾은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의 명소를 천안신문과 자매지 14개 매체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대한민국은 넓고 가볼만한 곳은 무궁무진하다! 일상을 뒤로 하고 잠시 떠나보자~ <편집자 주> ■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소재로 2천300만년전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 지역으로 정동진의 ‘부채끝’ 지명과 탐방로가 위치한 지형의 모양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이 된다고 해서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지명이 생겨나게 됐다. 해안단구는 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계단 모양의 지형으로 대체로 표면이 평탄하고 주위가 급사면 또는 절벽으로 끊긴 계단의 형태를 말한다. 정동진 해안단구는 한반도에서 보기 드문 지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한반도의 지반융기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자료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자연사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 인정되어 2004년 4월 9일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됐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에서 ‘정동’은 임금이 거처하는 한양의 경복궁에서 정방향으로 동쪽에 있다는 것에서 따온 지명이고, ‘심곡’은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원래는 해안 경비를 위한 정찰로였다가 2017년부터 민간인에게 개방됐다.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몽돌 해변과 부채바위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더 가까이 동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해안길로 떠나 보자. 코스 : 정동진 썬크루즈호텔 - 투구바위 - 부채바위 - 심곡항. 약 2.86km. 약 1시간 30분(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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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탐방②] 우리동네 '희로애락' - 동남구 신방동[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경기침체 등 전반적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는 가운데 천안지역 30개 읍면동의 주민들과 공존하는 이야기, 숨은 이야기 등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우리네 삶의 애환을 통해 이웃의 목소리를 듣고자 "우리동네 ‘희로애락’" 동네탐방 코너를 마련했다. 뉴스를 통해 나오는 사건사고 소식이 아닌, 이웃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살기좋은 천안, 이사오고 싶은 천안을 만들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두 번째로 도농복합 지역인 동남구 신방동(동장 허강욱)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신방동을 더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 신방동의 큰 일꾼인 김영한 주민자치위원장, 신동미 통장협의회 회장 등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 신방동에 대하여 신흥리의 ‘신(新)’, 방산리의 ‘방(芳)’을 합쳐 명명된 신방동은 21번 국도와 서부대로, 남부대로가 관내 중심을 관통하고, KTX 천안아산 고속철도역이 인근에 위치해 있어 교통의 요충지로 4만6천여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신방동은 도농복합 지역으로 도시와 농촌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같은 도시아닌 도시인’ 신방동이다. 신방통정지구의 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상가, 도서관 등이 차례로 건설되면서 인구가 점차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개발전망이 밝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천안천과 구룡천 주변으로 꽃길과 산책로, 자전거 도로가 있어 주민들이 여가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우리동네 주요 행사는 - 신방동의 대표적인 행사 ‘신방동 작은음악회’ 신방동의 대표적인 행사로는 매년 9월 주민자치위원회 주관으로 열리는 ‘신방동 작은음악회’를 꼽을 수 있다. 작은음악회는 주민자치센터에서 진행중인 밸리댄스, 에어로빅, 라인댄스 등의 수강생들이 한해 동안 배우고 익힌 것을 뽐내며 자랑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특히 밸리댄스는 각종 대회에서 우승은 물론이고 수준도 프로급이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 신通방通 5대 복지사업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복지사업 ‘신通방通 5대 복지사업’이 있다. ‘신通방通 5대 복지사업’은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5대 복지사업으로 ▲이웃이 이웃을 돕고 나누는 ‘이웃사촌 나눔이’ ▲행복키움지원단과 함께하는 ‘이웃사촌 보듬이’ ▲후원을 통해 꿈과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희망 키움이’ ▲취약계층에게 음식을 지원하고 안부를 묻는 ‘행복지킴이’ ▲쓰던 물품을 나눠 쓰는 ‘중고품 아낌이’가 있다. 특히 올해 10명의 장학생을 선정해 본인부담 10만원에 후원금 10만원을 더해 대학진학시 목돈을 챙겨주는 ‘희망 키움이’의 대학진학·취업준비 장려금 키움이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 신방동을 대표하는 자랑거리 - 주민들의 쉼터 ‘신방쉼터’ 신방동 주민들의 쉼터 ‘신방쉼터’가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신방쉼터는 2015년 신방동 청사이전과 발맞춰 준공되었으며 각종 체육시설(그라운드골프장, 족구장, 농구장 등)과 잔디마당, 바닥분수, 어린이 놀이터, 올챙이 연못, 생태연못 등 각종 편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주말에는 가족단위로 텐트를 치고 피크닉을 즐기는 주민들이 점차 늘고 있다. - 몇 년 후가 기대되는 무궁화동산 또한 지난 4월 6일, 천안 5곳의 로타리클럽과 관내 단체 100여 명이 함께 3.1절 100주년 기념 무궁화심기 행사를 통해 약 2,000주의 무궁화를 쉼터 주변에 식재했다. - 걷고 싶은 길 천안천변 산책로 2018년 하순에 자전거도로 정비가 완료되면서 자전거 이용객이 날로 늘어나고 있으며, 산책로 약 1km구간에 천일홍, 팬지 등 여러 가지 꽃들이 주민들을 반기고 있다. 천안천변을 산책하고 있는 한 노부부는 “하루에 두 번씩 꼭 천안천변에 나와 스트레칭도 하고 걸으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겨울철을 제외하고 늘 이쁜 꽃들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고 좋다”고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김병채 총무팀장은 “이외에도 신방동에는 천안관내 30개 읍면동을 대표하는 먹거리가 풍부한 신방동 먹자골목, 신방통정지구 먹자골목, 각종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신방도서관 등 자랑거리가 무궁무진하다”고 전했다. 이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신방통정지구가 시내권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회식 후 대리운전비가 훨씬 비싸다”고 농담을 건냈다. ■ 신방동의 수장 허강욱 동장 "부드럽지만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허강욱 동장“ 올 1월부터 신방동에 부임하게 된 허강욱 동장은 업무 시작전 천안천변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산책길을 걸으며 부서진 곳은 없는지, 꽃들은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두루두루 살피며 불편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조치를 취한다. 허 동장은 “주민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조치를 취함으로써 운동도 겸할 수 있고 1석2조의 효과로 보람을 느끼며 활기차게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신방동에서 30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주민 A씨는 “그동안 많은 동장님을 뵈어 왔지만 허강욱 동장님처럼 가까이에서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편안한 동장님은 처음이다. 다른 동장님들이 들으시면 서운하다고 하실지는 몰라도...”라며 “부드럽지만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포용력 최고인 동장님이시다”라고 추켜 세웠다. 다음은 김영한 주민자치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추진력과 열정가득한 신방동을 향한 애정이 넘치는 김영한 위원장” ■ 걸어온 길 친환경 지렁이 농장(화장품 원료)을 운영하고 있는 김 위원장은 농장에서 나오는 분변으로 관내 나무 등에 거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10년간의 주민자치위원을 거쳐 올해부터 위원장으로 신방동 주민들을 대변하고 있다. ■ 주요 활동사항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 수익금으로 매년 관내 소외계층 자녀들에게 장학금 지급한다. 지난 3월에도 10명의 학생들에게 각 30만원씩 지급하기도 했다. 또한 하천변,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날로 증가함에 따라 꽃을 보며 걷고, 달리는,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유채꽃, 해바라기 등 꽃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또한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신방동 주민자치위원회 주관으로 상록, 서천안, 도솔, 능수, 버들로타리클럽의 협찬을 얻어 무궁화 2,000주를 심어 무궁화동산 조성했다. 우리나라 꽃 무궁화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취지로 마련된 이번 행사는 몇 년후 무궁화동산을 이뤄 타 도시에서도 벤치마킹하는 그런 신방동을 이루고자 하는게 김 위원장의 바램이다. 이 외에도 먹거리 바자회, 불우이웃돕기 등 신방동을 위해 발로 뛰는 김 위원장이다. ■ 주변인들이 말하는 김영한 위원장은 신동미 통장협의회 회장은 “얼마전 김 위원장의 며느리가 캔커피에 일일이 ‘신방동의 매력男 김영한 위원장이 쏩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여 수강생들과 다함께 공감하며 나눠마신 적이 있다”라며 “그만큼 주변인은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인정받는 것 같아 너무 좋아 보인다”고 말한다. 또 주민 B씨는 “김 위원장의 추진력과 열정은 알아줄만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일을 추진해 주변 사람들, 특히 공무원들이 피곤할 것 같다”고 웃음을 보였다. ■ 신방동, 천안시에 바라는 점은 김 위원장은 “현 천안시환경사업소 자리가 2025년부터 민자화된다고 들었다. 그동안 악취로 수십년을 참고 지내온 신방동 주민들에 대한 보상으로 그 자리에 종합스포츠타운이 꼭 들어섰으면 하는 것이 주민들의 바램이다.”라며 “신방동은 천안의 강남이라 할 수 있는 지역으로, 남쪽으로도 개발에 신경을 더 써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지역자율방재단 단장, 천안시통장협의회 사무국장 등 각종 수식어가 붙는 신동미 통장협의회 회장은 “신방동에는 58명의 통장이 있다. 방산마을 등 3곳의 집성촌에는 통장 1인당 400가구가 넘는 가구를 관리하지만, 너무나도 열심히 애써주시는 통장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인터뷰가 있던 12일, 신방동 주민자치위·통장협의회·행복키움지원단 등 100여 명은 신방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축구센터 유치하면 천안경제 살아난다’, ‘스포츠도시 천안, 축구의 메카 천안’ 등을 외치며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천안유치를 위해 힘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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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탐방①] 우리동네 '희로애락' - 서북구 직산읍[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경기침체 등 전반적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는 가운데 천안지역 30개 읍면동의 주민들과 공존하는 이야기, 숨은 이야기 등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우리네 삶의 애환을 통해 이웃의 목소리를 듣고자 "우리동네 ‘희로애락’" 동네탐방 코너를 마련했다. 뉴스를 통해 나오는 사건사고 소식이 아닌, 이웃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살기좋은 천안, 이사오고 싶은 천안을 만들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첫 번째로 서북구 직산읍(읍장 정환기)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직산읍을 더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고 또한 직산읍의 숨은 일꾼인 직산읍이장협의회 장세윤 회장을 만나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 직산읍에 대하여 경부 철도와 국도1호, 수도권 전철 등 교통이 발달한 직산읍은 구릉지가 많으며 배, 포도 등 과수와 벼농사가 발달했다. 또한 수도권과 접근성 용이로 기업 입지 선호 최적지로 2만2천여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유일하게 중·고등학교가 없는 직산읍에는 삼은초, 직산초, 양당초 등 3개의 초등학교가 있다. 직산읍의 자랑거리는 우선 군동리 소재 도지정문화재 42호인 직산현관아, 도기념물 154호 직산사산성, 군서리 소재 도 기념물 109호 직산향교, 시 문화재 290호 민익현가옥 등의 문화재를 꼽을 수가 있다. ■ 우리동네 주요행사는 직산읍의 대표행사로는 매년 5월 청년회 주관, 직산농협 협찬으로 열리는 경로잔치, 8월에는 청년회, 이장단 주관으로 읍민체육대회가 열린다. 9월에는 부녀회 바자회 및 젓갈 바자회가 개최되며 10월에는 주민참여 노래자랑, 바자회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찾아가는 열린음악회가 개최된다. 또한 읍사무소 복지관에서 실버난타반을 연중 운영하며 갈곳 없는 은퇴자들의 활동 영역을 마련하고 있다. ■ 직산을 대표하는 자랑거리 올 1월 준공된 ‘직산삼은공원’을 꼽을 수 있다. 공사 시작을 알리는 첫 삽을 뜬지 13년 만에 준공된 직산삼은공원에는 게이트볼장, 축구장, 풋살장, 족구장, 호수생태관찰테크 등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생활편리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천연 인조잔디로 꾸며진 게이트볼장은 인근 성거, 입장에도 입소문이 날 정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모시리 신영욱 이장은 “게이트볼은 70대 이상의 노인층이 주로 하는 운동으로 알려졌지만 요즘에는 50대 중년도 선호하는 운동이 됐다”라며 “1주일에 몇 번을 찾는 운동 시간이 너무 기다려지는 일상이다”고 말했다. ■ 직산읍의 수장 정환기 읍장 “언제나 열려있는 직산읍 우리집에 놀러오세요~” 매일 아침 출근길 마을회관, 경로당 5곳에 눈도장을 찍고 출근을 하는 주민들이 인정하는 부지런한 정환기 읍장은 자칭 경로당의 아이돌이라 불리운다고 전했다. 정환기 읍장은 “직산읍으로 출근하면서 매일 마을회관,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의 안부를 살피는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어르신들로부터 크고 작은 이야기도 듣고 불편하신 점은 없는지 살피고 나면 웬지모를 뿌듯함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 읍장은 올해 새로운 사업으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직산 소재 초등학교 3곳의 학생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직산 12경을 주제로 한 사생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각 학교에서 선정한 수상작으로 달력을 제작해 학부모, 학생 등 직산읍민에게 배부해 지역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아이들에게는 역사적으로 산 교육을 전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다음은 직산읍의 숨은 일꾼 직산읍이장협의회 장세윤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습관이라기보다 직산읍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이다” ■ 걸어온 길 1951년 직산읍 상덕3리 출생으로 꿋꿋하게 직산읍을 지켜나가는 완연한 직산읍민이다. 현재 청국장, 간장 등을 직접 제조해 판매하는 농장을 운영하며 쌀농사 등을 짓는 대농부이기도 하다. 19년차 이장 경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현재 직산읍이장협의회 회장 및 천안이장연합회 감사를 맡고 있다. ■ 회장님이 생각하는 직산읍에 대한 애정도는 협의회장 3년차에 접어드는 시점에 생각해보니 본업인 농사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직산읍에 마음이 간다. 늘 직산읍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크지는 않지만 각종 행사가 있을때마다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 노력한다. 연간 단위로 따져보니 적지않은 금액을 개인 사비로 지원도 많이 했다. 집안 재정을 맡고 있는 와이프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 ■ 19년간 이장을 맡아오면서 힘들었던 점은 매년 부부동반으로 국내외로 단합대회를 떠나는데 그때마다 모시리 신영욱 이장과 협심해서 행사를 잘 치르려 무던히 애를 쓴다. 회원 한명한명의 요구사항 등을 맞추다 보면 힘이 들지만, 무사히 행사를 잘 치르고 나면 그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다. 특히 신 이장과는 어렸을적부터 오누이처럼 지내와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 주변인들이 말하는 장세윤 회장은 "장 회장은 거의 매일 읍사무소에 나와 있다보니 주변에서 집안일은 하지도 않고 나와 있는가 하는 얘기를 곧잘 듣는다. 새벽 5시반부터 밭일을 시작해놓고 나오는거다. 오후에 또다시 집에가서 밀린 집안일이며 농사일을 한다”고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특히 신영욱 이장은 “장 회장님이 매년 설, 추석 명절 때 당직을 서는 공무원들에게 집에서 손수 식사를 챙겨다 전해주는 일을 꾸준히 하고 계신다. 또한 함께 당직을 서며 말벗도 해주는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이라고 말했다. 또 정환기 읍장은 “정말 우리 직산읍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부각될 만큼 존재감이 크다. 늘 베풀어주심에 더할나위 없는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뜻이 맞는 분들과 어르신들을 위한 ‘실버스쿨’을 개설한 것을 꼽을 수 있다. 2017년 연말 천안상남감리교회에 터전을 마련한 실버스쿨은 20명으로 시작해 현재 60여 명의 어르신들이 매주 수요일 공부반, 댄스반, 노래교실반 등에서 활기넘치는 교육을 받고 계신다. 강사들도 순수 봉사활동으로 이뤄졌으며 강의가 있는 수요일에는 교회에서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늘 활짝 웃는 어르신들을 볼때마다 뿌듯함과 감동이 밀려온다. ■ 마지막으로 직산읍, 천안시에 바라는 점은 이장이 많다보니 일일이 맞추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어떤 사업을 추진시 각 이장단에 일괄적으로 공평하게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회장 주관으로 행사 추진의 무게를 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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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100주년 특집]천안지역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은?[천안신문] 충남동부보훈지청(지청장 채순희)이 3․1절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뼈아픈 역사를 상기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우리고장의 만세운동 알리기에 나섰다. 충남동부보훈지청은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공주시·세종시·아산시·천안시에서 발생한 3․1운동의 경과 및 독립운동가들의 헌신과 공적 등을 지역 언론사들에 차례로 제공했으며, 네 번째 특집으로 천안시를 소개했다. 채순희 지청장은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로부터 문화를 전수받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뼈아픈 역사를 상기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미래의 호국정신으로 계승시켜 다시는 국권을 상실하는 비운을 겪지 않고자 3․1절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이를 추진하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다음은 천안지역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이다. 목천면(木川面) 보통학교 학생 의거 3월 14일 하오 4시경 목천보통학교 학생 약 120명이 교정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이 외치고 근처를 누비고 다니며 시위했다. 이로 인해 주동인물 4명이 체포되었다. 입장면(笠場面) 양대(良垈)·입장(笠場)시장 3월 20일 10시 경 광명학교(光明學校)[월리암 경영의 미국 미션사립여숙(女塾)]의 교사와 학생 수십명이 직산금광(稷山金鑛)의 광부 및 부근 주민 약 70명과 함께 양대리 시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했다. 이들은 다시 하장리(下場里) 소재 입장시장(笠場市場)으로 향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이 외치며 일대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도중에 급보를 접하고 출동한 천안헌병대와 일대 충돌을 빚어 남자 40명과 여자 10명이 체포되었으나, 일부는 입장시장에 이르러 약 7백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며 일대 시위를 벌였다. 3월 25일 직산금광회사의 고용인 박창신(朴昌信)이 동료 안은(安銀)·한근수(韓根守) 등과 27일 박창신 집에서 태극기 다수를 만들고 백학서(白學西)를 동지로 참가시켜 28일 입장시장에서 거사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하여 28일 아침 6시 30분경 갱부(坑夫) 교체시간에 갱부들에게 독립시위운동 전개를 권유하여 그 자리에서 200여 명이 대한독립만세시위를 벌이며 입장시장으로 향했다. 아침 7시 반경 이를 저지하는 일제 헌병과 충돌하면서 양대 헌병주재소를 습격하고 헌병의 무기를 빼앗으려 하고 전화줄도 절단했다. 그 결과 8명이 체포되고 6명이 부상당했는데, 그 중 2명은 아깝게도 절명했다.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박창신은 1년 6월, 안은·한근수는 각 1년, 백학서는 10월의 형을 언도받고 불복 공소하였으나 6월 25일 기각되었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9월 4일 기각되었다. 3월 30일 입장에서는 약 3백명의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전개하다 출동한 일제의 구원병에게 6명이 검거됐다. 천안면(天安面) 3월 29일 천안 읍내에서 약 3천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대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대해 적의 천안헌병분대가 수비대와 합세하여 발포했고, 이로 인해 26명이 검거됐다. 이날 현장에서 주동인물 이문현(李文鉉)·허병(許柄)·최오득(崔五得)·인시봉(印時鳳) 등이 체포되었고,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의 초심을 거쳐 5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각 1년 6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풍세면(豊歲面)의 횃불시위 3월 30일 풍서리(豊西里)를 중심으로 주변의 산 20여 개소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였는데, 그 중 약 2백명이 만세를 절규하며 풍서리 시장으로 시위행진을 계속했다. 이에 대해 일제는 발포로 응수했다. 성환면(成歡面) 3월 31일 밤 수천명의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했다. 이에 크게 놀란 일제 경찰과 헌병이 총칼로 제지하고 나섰다. 갈전면(葛田面) 병천(並川)시장 수신면․성남면민계 주민들과 동면민계 주민들은 4월 1일에 병천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했다. 수신면(修身面)·성남면(城南面)민계는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한동규(韓東奎)·이순구(李旬求)·이백하(李伯夏)·김상철(金相喆) 등 20대 청년들로, 동면(東面)민계는 조인원(趙仁元)·조인원 아들 조병호(趙炳鎬)·유관순 아버지 유중권(柳重權)·유관순 숙부 유중무(柳重武)·조만형(趙萬衡)·김상훈(金相訓)·김용이(金用伊)·박제석(朴濟奭)·박봉래(朴鳳來) 등으로 구성됐다. 수신면․성남면민계 김교선은 홍일선(洪鎰善)의 발의로 갈전면 병천(並川)시장의 장날에 거사키로 하여 3월 29일경 한동규·이순구에게 그 뜻을 고하여 호응을 받고, 한동규는 다시 이백하의 찬동을 받았다. 4월 1일 김교선·한동규·이백한·이순구는 홍일선과 함께 병천시장에 이르러 각자 시장의 출입구에서 지나가는 사람에 대하여 만세 부를 것을 권했고, 김상철은 조인원(趙仁元) 등이 따로 기획한 운동에 합류하여 만세를 부르면서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에 일제 헌병의 발포로 즉사자가 발생하자 김교선·이백하·이순구 등은 약 1백명의 집단을 지휘하고 주재소에 쇄도했고, 김교선은 솔선하여 사무실 입구에 서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군중과 함께 만세를 절규했다. 또한 한동규는 헌병보조원이 강탈했던 태극기를 빼앗아 흔들며 이백하와 함께 주재소장에게 “죽은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도 죽여라.” 하며 대들고, 이백하는 유치장의 구금자를 석방할 것을 요청하고, 이순구는 갈구리로 유치장벽을 털어 구멍을 내고, 김상철은 유치장벽을 서너 번 발로 찼다. 그 결과 김교선(金敎善)·한동규(韓東奎)·이백하(李伯夏)·이순구(李旬求)에게는 각 2년, 김상철(金相喆)에게는 6월형이 선고됐다. 동면민계 유중권의 딸 유관순은 서울 이화학당(梨花學堂)에 재학하던 중 16세의 나이로 3월 5일의 남대문 운동에 참가했다가 독립선언서를 몰래 가지고 내려와 조인원(감리교 동면 속회장), 아버지 유중권, 숙부 유중무 등에게 보이고 서울의 정경을 자세히 보고했다. 병천시장은 멀리는 충북의 청주(淸州)·진천(鎭川), 가까이는 천안군(天安郡) 내 각면으로부터 온 장꾼이 모이는 곳이므로 천안 길목은 조병호(趙炳鎬), 수신면(修身面) 쪽은 조만형(趙萬衡), 진천(鎭川) 쪽은 박봉래(朴鳳來)에게 연락을 맡기고 밤에는 조인원이 속회장을 맡고 유중무가 교사직을 맡고 있는 예배당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3월 31일 밤 자정에 병천시장을 중심으로 천안 길목 목천넘어고개, 수신면 산마루, 진천고개마루에 다음날의 거사를 알리는 횃불을 놓고 다음 날 아침 병천시장에 몰려갔다. 4월 1일 하오 1시경 태극기와 ‘대한독립’이 새겨진 큰 깃발을 세우고 조인원이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중이 이에 화창하며 만세를 소리 높이 불러 시장 안은 삽시간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 동안 군중에게 태극기가 배부되고, 군중은 열을 지어 큰 깃발을 선두로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때 일본 헌병들이 기총(機銃)을 난사하여 사망자 19명과 부상자 30명 이상이 발생했다. 하오 4시경 시장에서 헌병에게 총검으로 좌복부(左腹部)와 머리를 찔려 빈사상태에 빠진 유중권을 아우 유중무가 업고 김용이·조인원·조병호·유관순 등이 뒤따라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유중무는 두루마기 끈을 풀어 제치고 적 헌병에게 큰 소리고 항의하고, 조인원도 저고리를 벗어 버리고 주재소장(小山)과 헌병 상등병[湊谷]의 총부리를 잡아 제쳤다. 이때 주재소의 헌병들은 잔뜩 겁에 질려 입구의 왼쪽 벽에 기대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유관순도 “우리는 나라를 찾기 위해 정당한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무기를 사용하여 우리 민족을 죽이느냐?”고 외쳐 헌병이 총뿌리를 들이대자 “죽이려면 죽여 보라.”고 하며 주재소장을 쿡쿡 찔러 혼을 냈으며, 조병호는 헌병 상등병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그러자 군중들은 겁에 질린 헌병들의 총부리에 달라붙고 탄약갑을 잡아당기고 하여 격투가 벌어졌는데, 헌병들의 야만적인 발포로 조인원은 가슴에 총을 맞고 왼쪽 팔을 칼로 찔리는 등 부상을 입었으며, 결국 다수의 사상자와 피체자가 발생한 채 군중이 후퇴했다. 후퇴한 군중은 천안·병천간의 전화줄을 절단하고 전주 1개도 쓰러뜨렸으며, 갈전면 사무소와 우편소를 습격하고, 부근의 산 위와 시장에서 사태의 진전을 주시했다. 또한 경비하던 일제 헌병 1명을 일시 납치하기도 했다. 일제는 흩어지는 군중에게도 등 뒤에서 발포하고 총검으로 마구 찔러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에 김구응(金球鷹)이 항의하다 총에 맞고 쓰러지자 일제는 야만무도하게도 그의 두개골을 박살내고, 비보를 듣고 달려온 그 모친 채씨(蔡氏)가 아들의 시체를 안고 통곡하자 그 노모마저 창과 칼로 찔러 죽였다. 일제는 이 같은 만행을 감행하고도 이날 늦게 수십명을 체포하였는데, 이들은 연행되어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았다. 그중 조인원·조병호 부자, 유중무·유관순 숙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유관순은 이날 부모를 잃고 본인도 옥고를 겪게 되었으며 후일 공주 감옥에서 만세운동으로 잡혀온 오빠 유우석(柳愚錫)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 심정이 어떠하겠으며, 옥중에서도 어윤희(魚允嬉)·박인덕(朴仁德) 등과 함께 만세를 계속 부르다 끝내 1920년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서대문 감옥에서 장독(杖毒)으로 옥사하였으니 커다란 민족한(民族恨)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유언은 “일본은 망한다. 절대로 망하고야 만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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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㊿ – 베트남 ‘호티홍’[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고등학교 3학년때 내년에 오늘 어디에서 뭐하고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때 나는 항상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베트남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한 사람도 많지만 나는 한국으로 오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서 살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 온지 1년 4개월이 된다. 많은 사람한테서 한국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그중에 궁금해서 질문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 유학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가장 많은 질문은 한국유학 생활이 무슨 색깔이냐는 질문이었다. 그때 나는 한국유학생활이 한 가지 색깔만이 아니라 여러 색깔이 있다고 말했다. 우선 행운의 빨간색이다. 친구들보다 나는 운이 좋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한국 유학의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은 시설이 현대적이어서 공부에 많이 도움이 된다. 또한 선생님들과 외국친구들을 통해서 다른 문화를 더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더 알면 또 하나의 삶을 더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한국에서 배우면 한국 선생님과 여러 한국 사람을 만나면서 대화할 기회가 더 많아지고 한국어 능력도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뿐만 아니라, 나는 종종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한국사람과 일하면서 빠르고 규칙적으로 일을 하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뜻함과 나눔의 핑크색이다. 베트남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한국에서의 공부는 열 배 이상으로 어렵다. 그런데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사람이 착하고 친절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 문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선생님은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해 주신다. 또 한국어 능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할 때 사장님들이 천천히 해 주시고 많이 이야기해줘서 외롭지 않다. 세 번째로 기대의 파란색이다. 한국에 유학 오기로 했을 때부터 베트남에 갈 때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성공하기를 기대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으니까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려움의 회색이다. 힘들 때 나눌 사람이 없고 아플 때 부모님도 없고 그럴때 자기 연민을 느낀다. 짐작하다시피 베트남 유학생들은 거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된다. 그래서 시간 관리를 잘 못하면 학습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인생은 원래 쉬운 것이 아니다. 인생이 시작부터 끝까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살 만한 가치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한은 언제가 지나가기 마련이다. 나는 이 한 번의 인생에서 후회하지 않고 마지막에 꼭 미소를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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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년 전통의 '홍성 덕명초'...역사 속으로[천안신문]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서 가장 오래된 104년 전통의 덕명초등학교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덕명초는 인근에 2014년 개교한 광천초등학교와 통폐합됐다. 100여 년 전통의 명문 초교가 문을 연지 5년밖에 안된 신설 학교로 흡수 통합되는 굴욕을 당했다. 덕명초교는 1908년 덕명의숙(학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사립학교가 효시다. 당시 광천지역의 선각자 서승태 선생이 주도해서 근대교육 수용과 민족의식 자각을 위해 설립했다. 그러나 한일합방 후 1911년 일제는 조선교육령을 제정하고, 사립학교를 폐교시키거나 인수해 공립보통학교로 초등교육체제를 개편한다. 덕명학교도 이에 따라 사립학교 체제를 마감하고 1915년 11월 3일 광천공립보통학교(4년제)로 인가를 받아 새 출발했다. 광천공립보통학교는 1938년 4월 1일 광천 신진공립심상소학교, 해방 후 1946년 9월 1일 광천제1공립학교가 되었다가 1949년 덕명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서승태 선생이 최초로 설립했던 사립학교의 이름을 되찾아 온 것이다. 그러다가 1996년 3월부터 덕명초등학교가 되었다. 2019년 1월 10일 덕명초교는 마지막 졸업식을 했다. 그날 제103회 졸업식에서 23명의 졸업생을 내보내고 남은 재학생 60명은 광천초교로 편입시켰다. 덕명초교 병설유치원도 제24회 졸업식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덕명초교는 지난 100여 년 동안 1만5000여 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충남도지사를 지낸 이완구 전 국무총리, 지난해 별세한 장석환 전 국회의원, 최건환 경주월드리조트 사장을 꼽을 수 있다. 그밖에도 중앙과 지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동문들이 많다. 그만큼 동문들은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학생 수 감소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학교의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2015년에 이 학교 동문들은 개교 100주년을 맞아 성대하게 잔치한 적도 있다 지금도 쓸쓸하게 비어 있는 덕명초교 운동장 한 모퉁이에는 그때 동문들이 세운 기념비가 있다. ‘덕명초등학교 개교100주년기념사업회’ 이름으로 웅장하게 세운 3m 높이의 ‘번영의 탑’은 그 후 채 5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름값도 하지 못한 채 쓸쓸한 교정을 지키고 있다. 지난 5일 점심시간 무렵 기자가 우연히 방문한 덕명초등학교는 너무나 조용했다. 새 학기를 맞아 떠들썩해야 할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교문의 학교 명패는 떼어갔을 뿐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직도 개학하지 않은 학교의 모습 그대로였다. 단지 트럭이 여러 대 드나들면서 본관과 별관 사이 앞 운동장 한쪽에 공사가 벌어진 모습이 보였다. 다가가보니 학생들이 사용하던 각종 교구재가 밖에 쌓여 있고, 인부들이 그것을 분류하거나 계속 안에서 뜯어와 밖에 부리고 있었다. 멜로디언, 아코디언 등의 악기와 지구본을 비롯한 각종 과학기자재 등 멀쩡해 보이는 물건도 많았다. 그러나 학교를 철수하면서 쓸 만한 것은 다 가져가고 남은 물건은 오래 돼 버리고 간 것이라고 했다. 이웃에 있는 광천초교는 광동초교, 광남초교, 대평초교를 통폐합하면서 옛 광동초교를 허물고 초현대식 교사로 새로 지어 2014년 개교를 했기 때문에 학교의 모든 시설과 교육환경이 뛰어나다. 그래서 덕명초교 학부모들은 오랜 전통과 역사보다는 최신 시설의 교육환경을 원하며 신설학교와의 통폐합을 추진해 뜻을 이뤘다. 광천읍지역 근대교육의 산실이었고, 상징이었던 덕명초교의 폐교는 동문들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주는 허탈감도 크다. 지역경제 쇠퇴와 함께 저출산으로 인해 입학생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원인인 데다 오랜 역사와 전통만큼이나 낙후된 교육환경 때문이어서 동문들은 어쩔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이고 있다. 홍성교육지원청에서는 덕명초교 활용방안을 놓고 TF팀을 구성해 3차 협의회까지 하며 연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최봉현 주무관은 “홍성군청과 협의해 군내 학교 학생들을 위한 안전체험관이나 그 밖에 교육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가급적 학교의 형태를 현재대로 보존하면서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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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㊾ – 콜롬비아 ‘산츠 베르날 마리아’[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는 한국에 오려고 했을 때 고민이 많았다. 그 중에 한국에 있는 친한 친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때의 나는 가까운 미래에 대해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 전혀 몰랐지만 용기와 각오를 모았고 이민을 오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유학 생활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 인간관계의 가치에 대해 배우고 있다. 고향에서 멀리 있는 곳에 살면서 휴일과 특별한 날은 가장 외로운 날이라는 사실은 대부분 이민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다. 나한테도 그렇게 느껴졌다. 콜롬비아는 추석이 없지만 지난해 추석 때 한국 사람들이 다 고향에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안타깝고 가족이 더 많이 그리웠다. 추석 며칠 전에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친구로부터 갑자기 메시지가 왔다. “잘 지내고 있어? 나는 유학을 했을 때 추석과 크리스마스때 혼자 보내게 되서 너무 슬프고 외로운 기억 아직 남았어. 그래서 요즘은 너의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나랑 같이 추석을 보내는 게 어떨까?”...나한테 그 말은 지금까지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해서 추석은 친구와 친구의 가족이랑 시간을 보내면서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날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친구 어머니께 어떻게 부르면 되냐고 여쭤보니 '엄마'라고 부르면 된다고 하셨다. 8개월 동안 엄마를 직접 못 만난 나에게 그 친구 엄마로부터 엄마의 사랑과 그 사랑으로 요리한 밥을 먹는 게 눈물 난 만큼 인상적이었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외로운 것보다 더 걱정되는 일이 있다. 그 걱정은 바로 입원하는 것인데 얼마 전에 그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그때 친구랑 어떻게 병원에 같이 가게 되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지만 그 어려운 시간을 같이 있으면서 조금 더 ‘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응급실에서 기다리면서 우리 학교 간호사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 가기 전에 보건실에 갔는데 간호사가 어떻게 됐는지 걱정이 되서 직접 우리에게 연락을 준 것이다. 그뿐 아니라 간호사가 퇴근하자마자 병원에 같이 있어 주었고 밤늦은 시간 친구의 수술이 다 끝날 때까지 우리 옆에 있어 주셨다. 간호사 덕분에 그 낯설 병원의 경험이 덜 무서워졌다. 우리랑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간호사님의 큰 고생덕에 우리한테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간호사가 항상 우리 옆에 있지 못하는 탓에 친구가 회복하는 동안 우리끼리 친구를 보호했는데 아픈 사람은 어떻게 보호하는지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와 같은 존재없이 우리는 아주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환자가 아픔 없이 편하게 있고, 더 빨리 성공적인 회복을 할 수 있는지 몰랐다. 다행히 옆 침대 환자의 간병인이 우리를 계속 가르치며 도움을 주고 걱정을 해줬다.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에 식사하는걸 잊고있을 때 “아가씨들, 얼른 식사하러 가세요. 저는 환자 밥이 오면 도와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과일도 건네주셨다. 같은 방에 계신 환자들이 다 우리 잘 지켜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한국에 오기 전에 외로울까 큰 고민이었지만 이제는 한국사람의 진지한 마음을 느껴서 그 고민이 조금이나마 없어졌다. 1개월 동안 도와준 사람한테 배운 것은 고향에 살면서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고향의 반대편 나라에 살면서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소중한 경험을 많이 얻어서 한국인의 사심 없는 마음과 ‘정’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은 미래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과 더 깊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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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㊽ – 일본 ‘이치타니 이야나’[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나에게 한국은 좋은 나라이지만 나의 고국인 일본에서 볼 때는 서로를 밀어내는 나침반 같은 나라였다. 안 보이는 벽이 있는 느낌의 나라 한국이었다. 어느날 나는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한국어를 공부하면 할 수록 새로운 단어가 서로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한글의 신기함과 재미를 느꼈다. 그래서 8개월 전에 한국에 왔다.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다보니 선생님께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가르쳐 주셔서 일본에서 배울 수 없었던 표현을 배우고 여러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지난해 10월에 우리는 민속촌에 갈 기회가 있었다. 한국드라마에서만 본 적 있는 꿈같은 곳에 들어갔다. 한국의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민속촌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되었다. 옛날 건물의 아늑한 분위기에서 펑화를 느꼈다. 옛날 한국은 가난했다고 들었지만 그만큼 서로 도우면서 살고 있었던 것 같아서 새삼 한국은 좋은 나라라고 느꼈다. 그런 나라에서 공부하는 나는 정말 행복하다. 또한 전통적인 예술공연도 봤는데 말을 잃을 만큼 대단했다. 줄타기, 사물놀이, 말 연기하는 사람의 용기나 여러 악기의 조화, 말과의 소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관객을 기쁘게 하려는 한국 사람의 깊은 정을 느낄 수 있었고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잘 할 수 있을지 조마조마해서 보는 내내 손에서 땀이 났다. 전통적인 예술공연을 보면서 ‘왜 아직까지 이렇게 좋은 문화를 몰랐을까?’생각했다. 이렇게 나의 나라를 넘어서 다른 나라에 와보면 진심으로 그 나라의 좋은 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에 와서 많은 한국문화를 알게 되었다. 이번의 체험을 통해서 한국이 지금까지보다 더 좋아졌고 한국이란 나라가 더 가까워졌다. 온세계 사람들이 이런 좋은 문화를 알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이 마음까지 가까워지면 좋겠다. 아직은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소리를 듣지만 나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를 좋아하고 두 나라 모두 좋은 문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안 보이는 벽이 깨지면 좋겠다. 나는 일본사람으로서 한국에 와서 진심으로 한국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은 한국문화를 배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먼저 나부터 한국의 좋은 점을 알고 일본과 한국의 마음까지 기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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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학생이 바라본 한국문화㊼ – 이탈리아 ‘클라우디아 소두’[천안신문] 천안신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선문대 한국어교육원(원장 하채수)의 협조를 얻어 연재한다. 4년 전 여름, 한국에 처음으로 오게 됐다. 그 여름에 대해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무더움의 열기, 산의 생생한 색깔, 혀끝에 박혀 있는 어려운 한국말, 또한 멜론 같은 단 한국 사람들의 정이 생각이 난다. 사실, 받았던 강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그 첫 한국 여행은 고작 2주일 뿐이었다. 한국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비행기를 예약하고 친구 집의 길을 찾았다. 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지 6개월이 다 돼서 말하기 실력이 아직 부족했던 나는 굉장히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다. 공항 밖에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영어를 못해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아울러 무모한 운전을 해서 정말 무서웠다. 한술 더 떠서 주소가 틀려서 찾기 어려왔다. 그래서 시간이 더욱 더 많이 걸렸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런 시작은 벌써 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내 친구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는데 한국의 첫인상은 무섭고 불안했다. 게다가 친구의 어머니도 한국어만 할 수 있어서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었다. 매일 매일 아이처럼 서툴러서 친구가 없으면 한국말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져 가장 쉬운 문장조차 말할 수 없었다. 날씨도 엄청 무덥고 짜증이 나서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내 기분을 눈치 채시고 같이 등산하러 가자고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그 때 내 친구는 아르바이트 탓에 너무 피곤해서 못 일어나서 어머님과 단둘이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족한 한국어 실력 탓에 긴장하기 그지없었다. 산길은 너무 길고 산의 정상에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무려 3시간 동안 산에 올라가니 갑자기 아름다운 경치가 나타났다. 나뭇잎의 녹색, 하늘의 파란색, 햇살의 눈부신 하얀색, 꽃의 노란색 등이 아직도 내 눈에 생생하게 선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무덥기 그지없어서 친구 어머님은 멜론을 드셨다. 사실 나는 멜론이 입에 안 맞는다. 그렇지만 더위를 타는 나를 생각해 친절을 베풀어 주셔서 그 멜론을 다 먹어버렸다. 멜론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긴장감이 없어졌다. 친구 어머님은 간단한 한국어로만 말씀하시는 노력을 해 주셔서 나도 간단한 한국어로만 대답했다. 또한 나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한국어를 말할 때 실수를 많이 해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한국의 첫인상은 무섭고 불안했지만 그날 먹었던 멜론처럼 달고 내 어머니의 말처럼 따뜻한 친구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막혔던 가슴이 트였다. 만약 그 무덥던 날 친구 어머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한국어 공부를 포기하고 한국에 살지 않았을 것이다. 4년이 됐는데 친구 어머님을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어머니가 항상 내 안부를 묻는다고 들었다. 기회가 생기면 다시 찾아뵙고 나의 한국어 실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여드리고 싶다. 첫인상은 물론 중요하기 그지없지만 해외에서 살기 위해 첫인상만 믿지 않고 새롭운 인상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긍정적인 인상을 받게 된 나는 지금도 친구 어머님께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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