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조양정미소’, 40여 년 동안 정미소를 운영한 이문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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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정미소’, 40여 년 동안 정미소를 운영한 이문숙씨

기사입력 2013.05.0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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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성남면에서 재배된 벼를 도정, 전국 최고의 쌀로 탄생!
‘쉬이~풍, 쉬이~풍, 쉭쉭~풍풍.’

▲ 조양정미소 이문숙 대표

40여 년간 한자리에서 정미소를 운영해온 곳이 수신면사무소와 성남면사무소 중간지점에 있다.

긴긴 세월 우리네 농촌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그 옛 모습속의 정미소다. 정감이 가야된다 말해야 하는지 사라져 가는 옛 방앗간이 아쉽다고 말해야 할지 하여튼 지금도 그 정미소의 통통통 거리는 방아 기계는 돌아가고 있다.

▲ 옛방식의 조양 정미소

동남구 성남면 봉양리에 위치한 ‘조양정미소’가 40여 년 전의 통통방아 기계를 이용해 벼를 찧고 있다.

아버지에 가업을 이어 군대제대 후 1972년도에 2대째 정미소를 운영하는 이문숙(남,67) 씨는 “그때 당시 농사짓기는 어렵고, 방앗간이 돈벌이가 좋아 먹고 살기 좋은 직업이라서 하게 됐는데 지금은 예전 같지 않구먼. 그때는 방앗간을 하면 다들 부자였지”

▲ 밸트를 점검하는 이문숙씨

70년대만 해도 30~40가구만 있어도 방앗간이 있을 정도로 이곳 주변은 벼농사를 짓는 가구가 많았다고 한다.

현재는 면에 하나정도 있을까 말까 할 정도다. 예전처럼 농가에 벼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이유로 옛 모습의 방앗간은 점점 사라져 흔적만이 많아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은 수신.성남 일대는 멜론과 오이로 더 유명해 졌다.

▲ 각종 벨트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조양정미소가 언제 막을 내리게 될지는 모르지만 옛날 방식의 벼 찧는 모습들은 우리네 머릿속에 영원히 기역 될 것이다.

옛날이라는 표현이 옳을까?

▲ 도정된 쌀을 20kg씩 담고 있다.

매년 겨울이면 통통방아 집집마다 옮겨 다니며 일 년 정성 들여 땀 흘려 지었던 쌀농사 방아를 찧던 시절이 있었다. 한집 옮겨 다닐 적엔 3~4명 좁은 시골 길. 때론 냇가를 따라 호흡을 맞추고 발도 맞추고 벼 가마를 옮겼던 시절이 있었다.

▲ 도정된 쌀을 담고 있다.

지금은 화물차를 이용하고 지게차를 이용해 예전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정미소도 현대화된 기계를 이용해 기계의 버튼만 누르면 도정을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 시책에 따라 7분 도미 쌀 증산 일환으로 현미 도정기의 등장으로 통통방아는 사라지고 덩치 큰 현미 도정기가 자리매김하였었고, 이후 집집마다 옮겨 다니며 쌀 도정하는 일도 사라졌다.

쌀 도정기를 지게로 집집마다 작은 기계 한 대로 쌀을 도정하는 시대로 변했있고 정미소는 옛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 도정된 쌀을 살펴보는 이문숙씨.

농사일 또한 수작업에서 기계화로 변했고, 이문숙씨의 일생과 함께해온 정미소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했지만 옛방식을 도정기를 고집하고 있다.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엔 경운기 엔진에 4륜미니자동차(일명 딸딸이)로 평생을 모으기만 했고, 버릴 줄 모르며 긴 세월 정미소를 지켜온 이문숙씨.

통통방아에서 현미 도정기로 그리고 집집마다 보유하게 된 정미기는 이젠 기억속에 남아 있다가 세대가 바뀌면서 구전으로 이어져 가며 희미하게 사라질 것이다.

성남면 조양정미소에 가면 그때 그 시절의 정미소가 세월의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아직도 쿵쿵쿵 돌아가고 있다.

‘쉬이~풍, 쉬이~풍, 쉭쉭~풍풍, 풍풍풍풍…쿵쿵쿵쿵’

40~50대라면 이 소리가 무슨 소린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 30~40호 정도의 마을마다 하나씩 있었던 동네 정미소의 원동기를 돌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 오는 듯 추억이 이런 소리라면 시각으로 오는 기억은 뽀얀 쌀겨 먼지를 덮어쓴 방앗간 주인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하얀 쌀, 쌀밥 한 번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던 그 시절엔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흰쌀만 봐도 마음이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콧속까지 시커먼 먼지를 쓴 방앗간 아저씨는 쌀을 한 움큼씩 집어 쌀이 잘 찧어졌나 확인하곤 했던 시절. 아직도 그 방법으로 방아를 찌며 정미소를 지키고 있는 이문숙씨를 보며 사라져가는 우리 주변의 아쉬운 마음을 갖게 한다.

우리 주변에 정미소가 어느 사이엔가 하나 둘 자취를 감추었고,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풍경이 됐다.

정부의 양곡수매량이 늘어난데다 농협이 운영하는 대형 도정공장이 들어서고, 집집마다 도정기계가 갖춰지면서 마을의 가장 큰 공장이었던 옛날 정미소는 사라져 가는 것이다.

특히 찧은 지 오래된 쌀은 수분이 날아가 밥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농가는 이제 집에서 먹을 만큼의 쌀만 찧는다.

성남면 봉양리 조양정미소에서는 지금 묵은 벼의 도정은 취급하지 않고 그해에 생산된 벼만을 도정하고 있다.

이문숙씨가 좋을 쌀을 고르는 방법에 “쌀알이 작으면서 윤기가 나며 맑은 쌀이 밥맛도 좋은 최고의 쌀이다”며 “묵은 쌀은 끈기가 떨어져 밥맛이 없어 일절 취급하지 않고, 수신 성남면에서 생산된 쌀은 최고의 밥맛을 만든다”고 40여 년 동안 지켜온 조양정미소의 도정된 쌀이 가장 우수하다고 말했다.

성남면 봉양리 마을에 가면 매일 벼를 도정해 80kg의 쌀을 200가마 도정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40여 년을 지켜온 조양 정미소

그때 그 시절의 정미소가 세월의 산을 넘고 시냇가 건너 모인 벼의 도정하는 소리가 여덟 팔자의 모양인 피데(가죽밸트)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아직도 이곳 사람들은 이 방앗간에서 벼를 찧어 먹고 있다.

조양정미소 쌀은 주가에 가면 80kg 18만5000원, 40kg 9만3000원, 20kg 4만8000원, 10kg 2만4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조양정미소’천안시 동남구 봉양리 4구 56번지
 041-553-0310 / 011-455-7562 이문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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