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송토영의 공감톡톡-⑨] 첫 발령과 연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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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토영의 공감톡톡-⑨] 첫 발령과 연구학교

기사입력 2020.08.1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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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신문] 충남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 그 곳이 나의 첫 발령지이다.

대천해수욕장의 근처에 있는 ㅇㅇ초등학교, 그 당시에는 국민학교라 불렸다. 2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교감선생님으로 발령이 나서 그 자리에 담임으로 발령이 났다.

수업을 하는데 교과서에 그림만 있지 글자는 별로 없었다. 교육과정은 대학에서 이론으로 배웠지만 현장에서는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수업에 대하여는 무지했다.

고민 후 선배님에게 여쭤보니 지도서를 갖고 교재 연구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해가 지나고 새 학년에는 4학년을 맡게 되었다. 교내 연수를 하는데 연구주임 선생님이 연구주제와 내용과 방법을 말씀하시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선배님과 우리 학급이 시범 학급으로 지정되어 연구주임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진행했다.

가을에 연구학교 공개 발표가 있어 시범 수업 후 강당에서 연구내용 발표 후 질의 응답 시간에 장학사님께서 수업자인 저에게 질의를 하시는데 알 수 없는 질의에 답변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던 중 연구주임님께서 대신 답변을 하였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 후 틈틈이 교총에서 부록으로 나오는 현장 연구 내용을 읽었으나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천 시내에 있는 ㅇㅇ학교로 근무지를 옮겼는데 6학년을 맡게 되었다.

그 학교는 특징이 매월 월말고사를 보는데 시험 감독을 교체하여 보고 채점도 감독이 하여 연구주임에게 제출하면 학급 평균 80점 이상 학급만 운동장에서 방송으로 학교장 표창을 하였습니다.

시내 중심에 자리 잡은 학교로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듣을 수 있었다. 학급당 학생은 65명 정도 꼴등 평균이 70점 정도되어야 도달 할 수 있는 점수가 학급 평균 80점이다.

'질문이 있는 수업, 토의 토론 수업, 사고력 신장, 탐구력 신장' 등 다 좋은 말이며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교육학 책과 현장연구물의 이론적 배경에 나오는 말이지 체험 삶의 현장이며 전쟁이었다.

학급 평균 80미만 이면 무능한 교사였다. 우리반 학생들 등교 시간은 7시 30분, 책상에는 전날 학습한 내용을 중심으로 시험지가 있고 학생들이 풀면 담임인 제가 설명과 함께 문제를 풀어보고 가장 많은 오답을 찾아 재 지도하였다.

청소는 점심 시간에 하교는 퇴근시간 30분전에 하였다. 학원도 이런 학원은 없었을 것이다. 5학년 때의 담임이 독하다고 한다. 어떻게 그 아이들을 학급평균 80점을 넘을 수가 있는가에 대해서 해서 않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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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가 무섭지 될 때까지 하면 된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는데 학년 주임 선생님이 현장 연구에 참여 하신다며 연구논문을 쓰신다고 하여 전 학교의 쓰라린 경험이 있어 빌려서 읽어 보고 습자을 하는데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방과 후 저녁에 막걸리로 접대를 하면서 궁금한 것을 여쭤보니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전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이해되는 부분은 있었다.

교총 현장 연구 일반화 자료 수학과를 놓고 영역을 바꾸어 써보고 수정하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저녁에는 선배님과 막걸리 잔을 놓고 쓰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지도를 받고 다음날 낮에는 수정하여 지도를 받았다.

80년대 초에는 이렇게 교직을 시작하였고 이런 모습이 학교 현장의 모습이었다. 좀 더 큰 곳으로 옮기고 싶었다.

당시에는 대전으로 갈 수도 있었고 또 경기도로 전근가시는 선배님들도 많았다. 경기도에 갔다가 서울로 갈 수도 있었다. 이곳 저곳을 알아보았지만 최종 선택한 곳은 천안이었다.

대천에서는 아이를 키울 수가 없어 천안으로 내신을 내었는데 다행히 부부교사 동시 내신 점수 덕분에 천안으로 올 수가 있었다.

1986년 3월 천안 ㅇㅇ초등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천안에서 수신 방향에 있는 학교로 복자여고 앞 삼도상가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면 학교까지 300m 정도 걸어가는데 비가 오면 장화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

그 학교에서 나름대로의 교직관을 갖게 되는 훌륭하신 교장선생님 두 분을 모시게 되었다. 물론 함께 근무한 선배님들도 훌륭하셨다.

초등학교에서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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