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동 장광래 씨
[천안신문] 복지가 무엇보다 중요시 되는 시점에 모방
선행 캠페인에 앞장서는 천안신문은 밝은 사회 구현을 위해 나눔 문화 확산과 음지에서 말없이 봉사하시는 참된 분들의 따뜻한 소식을 알리고자 한다.
<편집자 주>
중앙동 골목에서 건강원을 운영하고 있는 장광래씨는 더운 여름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며 필자만 선풍기를 쐬도록 하고 자기쪽은
괜찮다고 사양하는 모습이 먼저 눈에 띈다.
장광래 씨는 전주 사람이다. 85년도에 이곳 천안에서 집을 사서 자리를 잡은지 어언 30년이 지났다고 전한 그는 현재 슬하에 40세, 33세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는 현재 서예학원도 운영하며 (집)안식구를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남산공원에서 노인회장을 통해
소개받았다"며 "골목 골목 들어가면 소를 파는 곳들이 있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소전마을이라고 그 당시에는 불렸는데, 장날이면 그곳은 완전한 시장통이 됐다"며 그
때 당시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 필자에게 건네준 사진첩에 새마을 운동 때 태극기 달기 운동을 했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거리마다 차가 없었으니 신호등도 없었지만 완전히 위협적이었다"며 "그때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정화위원회(현 바르게
살기 위원회)에 가입해 아침마다 교통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봉사활동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중앙동 바르게살기위원회는 마을 주민들로 구성되어 지금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랑의 김장나눔, 밑반찬 나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깃발 들고 열심히 활동했지만 전두환 정권 때 사회정화책의 일환으로 설치된 삼청교육대로 인해
분위기가 삼엄해졌다"며 "그 결과 정화위원회가 중단되었고 새마을 운동 시대 때 다시 거리청소, 화단 정리 등에 앞장서게 됐다"고 말했다.
제일 힘들었지만 빛나던 봉사활동 시절에 대해 눈빛을 반짝이며 파지 봉사를 꺼내는 그 이다.
1년간 파지를 주어 모아 들인 돈은 천안시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의 일환으로 멋지게 탄생했다. 처음에는 택시마다 태극기를 달아주고 그 다음에는 버스가 멋지게 날도록 달았다.
어려웠던 적은 없었냐고 묻는 필자에 질문에 그는 "파지라고 하면 가벼워 보이지만 은근히 무겁다.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이다"라며
"마을 새마을 부녀회 회원들과 함께 파지가 제일 많이 나온 축협에서 한달에 5000원 주고 신문지와 상자를 가져다가 새마을 운영 자금에 보태고, 차곡차곡
장학금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차곡차곡 쌓아지던 파지 줍는 일은 새마을 부녀들도 매일 한다는게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까. 나중에는 못하겠다 하더라"며 밝게 웃었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필자가 통화할 때 느꼈던 연탄불처럼 따뜻한 느낌 그대로 그는 20년 전에도 주민들을 위해 봉사했다.
그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홀로 끼니를 거를까 하여 남산공원 앞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의 라면봉사를 시작했다며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참여했다고 전했다.
"어르신들이 자존심 상해 할까봐 노인회장 총무를 통해 의견을 듣고, 서예학원 학생들도 같이 참여해 이웃사랑도 배울 수 있도록 교육
차원에서 시작하게 됐다"며 "봄,여름,가을,겨울이 지나도 그 자리에 어르신들이 항상 모여왔다"고 말했다.
"라면 봉사는 1주에 2회씩 수요일, 토요일마다 했었고 200-300명의
노인분들이 모였다."
소박하게 시작한 봉사는 어르신들을 위해 국수봉사, 밥(선지국) 봉사로 이어졌다.
중앙동 새마을회 전용복 회장은 "정 씨는 봉사라면 가장 먼저 앞장서고
사람과 환경을 지키는 일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활동한다"며 "대접받아야 하는 나이에 대접을하니 뭉클하다"고 전했다.
그의 봉사철학은 "내가 덜 쓰고 옷 하나 덜 사
입고, 헛돈 쓰지 않으면서 그게 모여져서 하는 것이다"라는 단순한 것이지만 막상 해나가기는 어렵다.
현재도 정 씨는 꾸준히 취약주민들을 위해 매달 기부문화를 펼치고 있고, 아침
바람에 눈물이 나도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매일 구성초등학교 앞으로 나가 거리 질서 봉사를 하고 있다.
"흥타령 춤축제를 처음 했을때는 수신호로 질서 정리를 해나갔다. 이제
신호등도 생기고.."라고 웃으며 그는 "학교 측에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와 택시기사들이 하루이틀 안 나오면 감기 걸렸냐고 걱정해주고 나같은
사람에게 마음 써 주는게 고맙다"고 겸손한 말을 덧붙였다.
1990년대 자율방범대 활동을 하면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그는
현재도 말없이 파지를 모은 기금 마련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음지에서 말없이 굵게 흘러가는 봉사활동은 세상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밝은 봉사활동이 참된 지역사회 모습으로 이어져 밝은 사회문화 구현에 이르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