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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 도립병원·홍성농업전수학교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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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 도립병원·홍성농업전수학교 세워

1927년 홍성공업전수학교 개교, 1935년 대전 이전

[홍성=충지연] 충청남도발전사’에 의하면, 홍성공립공업전수학교는 홍성군 홍주면에 1927년 6월 개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홍양사’에 의하면, 홍성공립공업전수학교는 홍성읍 고암리에 2년제 학교로 설립됐으나 3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대전으로 이전했으며, 학교 터에는 ‘도병원’이 건립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학교부지에 설립된 ‘도병원’은 홍성의료원이며, 홍성의료원 연혁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

1928년 12월 13일 홍성공립공업전수학교 학생들이 학교 승격문제와 식민 실업교육에 항거해 동맹휴교를 단행했다. 13일에 시작된 동맹휴학은 17일까지 지속됐으며 학생들의 요구조건이 일부 수용되면서 마무리됐다. 1930년 1월에는 홍성공립공업전수학교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운동을 추진했다. 1월 19일 홍성공립공업전수학교 학생들은 ‘광주학생을 석방하라’는 격문을 시내에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추진했다. 학생들은 신간회 홍성지회 및 광천노동조합 등과 연대해 격문을 시내에 배포하고, 장날인 20일에 만세운동을 추진하던 중 관련자들이 홍성경찰서에 체포되어 7명이 퇴학과 근신 처분을 받았다.

1935년 당시 이범익 충남지사는 대전에 도청이 이전해 충남의 수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중등학교가 없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여 학교 신설을 계획했으나 여의치 못해 홍성공업전수학교를 대전으로 이전케 했다. 그리고 홍성에는 도립의원과 농업전수학교(현, 홍성고교의 전신)를 세워주기로 결정했다. 새로 발족한 대전공립공업전수학교는 교사를 삼성동에 건축하기로 하고 학생은 신입생 37명과 홍성공업전수생으로서 전입된 60명, 모두 97명을 3개 학년 3학급으로 편성했다.

1936년 4월 홍성의 가교사는 신설된 홍성도립의원과 홍성농업전수학교로 이관됐고, 모든 시설과 공장의 실습기계를 짐을 싸가지고 대전으로 옮겼다. 그러나 당시 대전은 도청소재지라고는 하나 보잘 것 없는 지방도시로 교육열이 빈약할 뿐더러 재력의 궁핍으로 본교사의 공사가 지연되어 들어갈 곳이 없게 됐다. 궁여지책으로 마침 대전경찰서가 신축성사로 이전해, 지금의 대전시 은행동 구 한일은행 자리였던 구 경찰서를 빌려 쓰기로 했다. 당시로서는 유치장 냄새도 가시지 않은 초라한 건물을 빌려 쓰지 않으면 안 될 상태였기 때문이다.

1936년 3월 31일자로 도립이 되는 동시에 학칙변경이 있어 단공과, 판공과는 합쳐 기계과로, 토목과가 신설되어 기계과, 가구과, 토목과의 3과로 개편됐으며, 1학년 모집인원은 기계과 30명, 가구과 20명, 토목과 30명으로 모두 80명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대전시 삼성동 교지에 6·25한국전쟁으로 타버린 본관 2층 14개 교실과 기계과 가구과 공장이 기공됐고, 23~4세나 되는 학생들의 조력을 얻어 공사가 진척돼 10월에 준공식을 갖게 됐으며, 12월 10일에야 마침내 전교생 230여 명의 봇짐이 옮겨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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