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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천안의 지명유래 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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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천안의 지명유래 ⑯

목천읍 지산리·교천리·신계리·천정리

[천안신문] 본보는 지난 151호부터 천안 각 읍면동의 지명유래에 대한 연재를 진행중이다.
천안이라는 지명에 대한 기록은 고려 태조 13년인 930년 8월 8일 기해 일에 고려태조가 대록에 내려와 동서도솔과 탕정의 일부와 사산의 일부와 대록의 일부를 병합하여 천안이라 하고 도독부를 둔데서 유래한다. 대록은 지금의 목천이요, 사산은 직산이며, 동도솔과 서도솔은 천안의 일부이며, 탕정은 온양 탕정의 일부다.
각 지역에 내려오는 천안의 지명은 1988년부터 이원표 선생이 동부 6개 면을, 1987년도부터 오세창 선생이 천안시를 조사해 1960년경 한글학회에서 발행된 ‘한국 지명총람’을 참고로 가감 수정해 동부 6개면은 1990년 천안군에서 ‘역사의 현장’으로 출간되었으며, 천안시는 1989년 천안문화원에서 ‘천안의 지명’으로 출간하였다. 그 후 1999년 천안시 문화원에서 시와 군에서 발행된 것을 합하여 ‘천안의 땅 이름이야기’로 출간했다. 이번 연재는 이를 바탕으로 했으며, 일부 내용은 천안 향토사학자 김종식 선생이 재조사를 통해 가감하였음을 밝혀둔다. <편집자 주>
 
1-목천면 천정리(한천마을) 새마을운동 건설사업 공사중 전경(1972년).jpg▲ 목천면 천정리(한천마을) 새마을운동 건설사업 공사중 전경(1972년).
 
▲지산리(芝山里)
지산리는 목천군 서면 상남산리, 하남산리, 양지리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루어진 마을인데, 마을명은 양지말의 「지」자와 상남산, 하남산의 「산」자에서 유래된 것이다.
▶지산1리(양지말)
-동암사 절터 : 동암사란 절이 흑성산(黑城山) 꼭대기에 있었는데 지금은 터와 절구, 맷돌 등 흔적만 남아 있다. 목천으로 이사 갔다 하나 정확한 소재를 알 수가 없다.
-노적바위 : 동네 뒤에 있는 큰 바위로 노적더미처럼 생겼다.
-골패바위 : 예전에 나무꾼들이 이곳에 쉬면서 골패(화투의 일종)를 했다고 한다.
-평박골 : 펀던말림 위에 있는 골인데 예전에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다가 이사 갔다고 한다.
-펀던말림 : 조금 펀펀한 고랑이다.
-장군펀던 : 예전에 장군이 앉아 지휘하던 곳이라 한다.
-구멍바위 : 큰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다.
-큰골 : 흑성산 밑 큰 고랑을 말한다.
-가는골 : 동네 뒤 큰골 옆의 작은골을 말한다.
-장고개(1) : 천안장(天安場)을 보러 넘어 다니던 고개인데 지금은 그 흔적만 있다.
-멧돼지골 : 예전에 산돼지들이 자주 내려와서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당골펀던 : 예전에 이곳에 당집이 있었다 하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가장(假葬)골 : 종안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어린아이가 죽으면 이곳에 묻었다. 애장골 이라고도 한다.
-갈미봉 : 갈모봉이라고도 하며, 승척골 서쪽에 있는 산으로 갈모처럼 생겼다.
-국수봉 : 국시봉이라고도 하며, 승천사(寺) 터 뒤에 있는 산인데 봉우리가 매우 수려하다.
▶지산2리(중남산, 상남산)
-뒷동산 : 동네 뒷산을 그렇게 부른다.
-아홉사리고개 : 마점에서 유랑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작은 산을 아홉 번 돌아야 천안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하여 아홉사리고개라고 한다. 또 고개의 모습이 국수사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장고개(2) : 천안장(場)을 보러 넘어 다니던 고개인데 지금은 없어졌다. 현재의 남양분유공장 자리이다.
-비성골 : 예전에 비석처럼 생긴 돌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능골 : 아주 큰 묘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고총(古塚, 묵은 묘소)이 되었다.
-부강골 : 이곳에 묘를 쓰면 부자가 된다고 전하나 아직 못 찾았다고 한다.
-절 펀던 : 예전에 이곳에 절이 있었다.
-느티나무(1) : 시(市) 보호수인데 수령은 300년 정도, 둘레는 5m, 높이는 15m 정도이다.
-느티나무(2) : 시(市) 보호수인데 수령은 300년 정도, 둘레는 3.5m, 높이는 12m 정도이다.
-가마들 : 가마논이라고도 하는데, 주물을 녹이던 가마가 있었다.
-사직박펀던 : 철을 생산하던 쇠점이 있었다.
-조산펀던 :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의 산이었다.
-굴바위 : 굴암이라고도 하는데, 노적바위 위쪽에 있는 큰 굴이다. 비가 올 때 30명이 은신하여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이다.
-상남산 : 양지말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노적바위 : 노적암이라고도 하며 동안골에 있는 바위다. 모양이 노적더미같이 생겼다.
-돈치기고개 : 사직박 펀던에서 부적골로 넘어가는 평평한 고개다. 나무꾼들이 이곳에서 돈치기를 하였다고 한다.
-동암골 : 동이안굴 이라고도 하며 사직박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평[병]풍암 : 평(병)풍바위로, 병풍을 쳐놓은 것 같이 생겼다.
-부적골 : 동안골 남쪽 너머에 있는 골짜기다.
-승적(勝敵)골 : 사직박펀던 위쪽에 있는 골짜기, 흑성산(黑城山) 서쪽 밑으로 매우 아늑하여 피난터라고 하며,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고도 한다.
-승천사(昇天寺)터 : 절펀던에 승천사란 절이 있었다. 옛날 이곳에서 도통한 스님이 도를 얻었다 하여 승천(昇天)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양지말(陽地) : 양달말, 양지리라고도 하는데 승척골 뒤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량동고개 : 상남산 마을에서 천안 유량동으로 가는 고개, 유량현(峴)이라고도 한다.
-장(場)고개 : 지산리에서 천안 구성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천안장(天安場)을 보러 다니던 고개이다.
-호랑이굴 : 동안굴 중턱 바위에 있는 굴, 예전에 승척골 부인들이 나물을 캐러 이곳에 왔다가 호랑이 새끼가 여러 마리 있는 것을 보았다. 부인들이 귀엽게 생겼다고 어루만지면서 좋아하였다. 한 부인이 무엇이 귀여우냐고 하자 어미 호랑이가 별안간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모두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밤중에 호랑이는 모든 부인의 나물바구니를 각각 그들의 집에 가져다주었으나 무엇이 귀여우냐고 한 부인의 것은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고 한다.
-중안말 : 중남산, 상남산마을과 양지말 중간에 있는 마을이다.
-줄바위 : 바위가 줄을 지어 서 있다.
 
교천리(交川里)
교천리는 목천군 서면 교항리, 일승천리, 이승천리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루어진 마을인데, 마을명은 교항리의『교』자와 승천리의 『천』자에서 유래된 것이다.
-교항(交項) : 돌마루, 교항리라고도 한다. 승천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돌아가는 목이다. 임란(壬亂) 후 경제가 황폐화 되었을 당시 물물교환을 하던 장이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아래침 : 아랫동네를 말한다.
-위침 : 윗동네를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
-사청말 : 예전에 물물교환을 하던 장이 있었을 때 이것을 관장하던 관청이 있었다고 한다.
-참새펀던(펀더기) : 따뜻하여 겨울에 참새가 많이 날아온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부엉더미 : 부엉새들이 이곳에 앉아 운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상하터 : 아랫동네와 윗동네 사람들이 나무하러 다니다 만나던 곳이다.
-납작골 : 예전에 쇠를 담금질하여 물건을 만들던 곳이다.
-두루봉 : 이곳에 오르면 두루 다 보인다고 하여 두루봉이라 한다.
-명막골 : 예전에 장인들이 움막을 짓고 살면서 물건을 만드느라고 밤새 불을 밝혀 명막(明幕)골이 되었다.
-돌마루 : 사람들이 산에서 나무를 해 오다 힘이 들어서 쉬던 평평한 바위이다.
-초막골 : 초막동, 이승천리, 승척골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일승천리 아랫동네이다. 철공인들이 초막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중골 : 예전에 이곳에 절이 있었다 한다. 혹자는 장인들이 물건을 만든 곳이었다고도 한다.
-각골 : 밭 50평이 뿔처럼 뾰족하다 하여 각골이라고 불렀다.
-날음터 : 예전에 장인들이 만든 물건을 나르고 숫자를 확인하던 곳이다.
-용지봉 : 이곳에서 용이 승천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용이 지붕을 지고 있는 형상으로 명당(明堂)이라고 한다.
-갈음매기 : 아래, 윗동네의 길이 이곳에서 갈라진다. 논에 대는 물도 이곳에서 갈라진다.
-구렁고개 : 안터에서 초막골로 넘어오는 고개다. 큰 구렁처럼 생겨서 고개가 험하므로 혼자 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모이골 : 예전에 장인들이 물건을 만들어 모아놓았던 곳이다.
-됫골 : 동네 뒷산의 작은 고랑을 말한다.
-느티나무1 : 수령은 200년, 둘레는 3m, 높이는 15m 정도이다.
-느티나무2 : 수령은 200년, 둘레는 3m, 높이는 15m 정도이다.
-무생잇골 : 승척골 앞에 있는 골짜기로 철과 관계되는 일을 했던 곳이다. 철을 분리하고 버린 부산물들이 산에 흩어져 있다.
-뱀날 : 텃골 아래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뱀처럼 길게 생겼다.
-승척골 : 승천골, 일승천리라고도 한다. 교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흑성산(黑城山) 밑에 있다.
-열녀 청주한씨 비 : 뱀날 끝에 있는 열녀 청주한씨 비는 1922년 2월에 세워졌다.
-장(場)고개 : 승척골에서 천안장으로 가는 고개를 말한다
-취암산골 : 취암산 동쪽 밑에 있는 골짜기다.
-텃골 : 승척골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다. 옛 집터가 있는데 창원 황씨들이 처음 이곳에 와 살았다고 한다.
 
신계리(新溪里)
신계리는 목천군 서면 신흥리, 농계리, 주막거리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루어진 마을인데, 마을명은 신흥리의 『신』자와 농계리의 『계』자에서 유래된 것이다.
신계1리(안터, 송말)
-장자울 : 장우동, 송말, 신흥리라고도 하며, 안터와 남화리 사이 흑성산 밑 골짜기 마을이다. 예전에 큰 부자가 마을을 이룩하였다고 한다.
-안터 구레 : 농사에 필요한 물이 항상 있는 안터 앞 논을 안터 구레라 한다.
-뒤루박골 : 교회 뒤 큰 고랑인데 예전에 쇠가 나왔다고 한다.
-지마골 : 한약으로 쓰는 고삼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고삼을 호마 또는 지마라고도 한다(虎麻, 芝麻)
-됫골 : 동네 뒤 고랑을 말한다.
-강당골 : 흑성산 밑 매골 옆인데, 예전에 이곳에 글을 가르치던 강당(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매골 : 마을 뒤 고랑인데 매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한다.
-송납산 : 동네 뒤 높은 봉우리. 흑성산에서 한 맥이 남으로 뻗어 작은 산을 이루었는데 송납산이라 한다.
-수녹골 : 구전에 의하면 쇠를 녹이던 곳이라 전하나 흔적이 없다.
-속대골 : 강대골. 옛날에 솟대를 세웠다고 하나 어느 때인지 알 수가 없다.
-농계리(農溪里) : 안터의 옛 지명이다. 승천 동북쪽 안에 있는 마을이다.
-송말 : 장자울이라고도 하며, 예전의 신흥리(新興里)다. 예전에 큰 부자가 살았다고 한다. 독립기념관이 생기면서 폐촌 되었다.
-진고개 : 승천에서 송말 앞으로 이어지는 고개로 높이는 낮으나 매우 긴 편이다.
-범박골 : 주물을 부어 물건을 만들 때 사용하던 틀을 만들던 곳이다.
-진남이골 : 이곳에 진남사(寺)란 절이 있었다.
-떼골 : 떼가 유달리 잘 자라 동네 초상이 나면 이곳의 떼를 가지고 묘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감나무골 : 큰 감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큰욕골 : 흑성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로 동네 사람들이 목욕을 하던 곳이다. 큰 욕골에서는 주로 남자들이 목욕을 하였다.
-작은욕골 : 큰욕골 옆에 있는 골로 여자들이 목욕을 하던 곳이다. 작은 욕골에는 남자들이 절대 갈 수 없었다.
-중골 : 예전에 절이 있어서 중이 탁발하러 다니던 곳이다. 장인이 물건을 만들던 곳이라는 설도 있다.
-높은행길 : 마을 앞의 한길을 말한다.
-다리실(橋項) : 안다리실과 바깥다리실이 있다. 이곳에 마을이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하며, 경부고속도로가 뚫리고 목천 인터체인지가 생겨 그 위로 다리가 놓여졌다. 이곳은 성남면 용원리, 목천읍 천정리, 신계리 경계 지점으로 옛날 누가 다리실(橋項)이라고 명명했는지 탄복할 따름이다.
-계피골 : 예전의 피난처로 아주 후미져서 몸을 감추기가 좋다고 한다.
-호롱골 : 혼령이 사는 곳이라 하여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였다고 한다.
-장고개 : 예전에 목천장을 보러 넘어 다니던 고개이다.
-큰 학골 : 예전에 목천이 낳은 학자 후천 황종해(黃宗海)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작은 학골 : 큰 학골의 옆에 있는 골을 말한다.
신계2리(승천, 주막거리)
-승천 : 예전에 어떤 사람이 도(道)를 얻었다 하여 승천(升天)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주막거리 : 지금의 버스 정류장 부근으로 예전에 주막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한다. 천안에서 넘어오는 사람, 목천에서 천안으로 가는 사람, 삼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모두 이곳을 지나가게 되어 잠시 쉬어 가는 주막이 길 옆에 많이 있었다고 한다.
-당집 : 지금의 오피스델 자리인데 당집이 있어서 동네 평안을 빌었다고 한다.
-장승거리 : 신계2리(성남면 분기점) 큰길 양쪽에 큰 미루나무가 있었고 거기에 장승을 세워 길가의 안녕과 동네 평안을 비는 노제를 지냈다. 도로 확 포장 사업으로 큰 미루나무를 베어낸 후부터 노제를 지내지 않는다.
-염장골 : 사람이 죽으면 염하던 사람이 살던 곳이라 한다. 천민이 하던 일이라 일반인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혹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며칠 이곳에 묻어 놓았다가 장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신계1리 입구 맞은편인데 아파트를 지으면서 없어졌다.
-어지미 골 : 염장골 옆인데 아파트를 지으면서 없어졌다.
-호령골 : 동성휴게소 앞 고랑인데 예전에 혼령이 사는 곳이라 하여 사람들이 나무하는 것을 꺼려하였다고 한다. 지금 아파트 공사로 없어졌다.
-왕자봉 : 촌로(村老)들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왕자의 태를 묻은 곳이라 하며, 혹자들은 근동의 모든 산들이 이 산을 향하여 절을 하고 있는 안산조배(案山朝拜)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는 산의 생김새가 왕자(王字) 모양을 하고 있어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일제 때 도로를 개설하면서 우물 목 고개의 허리를 잘라 왕자(王字) 형세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승천 노제 : 일제 말에 일본인들이 미신 타파란 명목으로 없앴다고 한다. 해방 후 젊은이들이 역시 미신이라 하여 미루나무를 베고 축문과 동네 계문서를 불살랐다고 한다. 지금 성남면 분기점 부근 길 양옆에 있었다. 노제 축문에 승천 지명이 승천(勝川)으로 되어 있었다고 촌로(村老)들은 기억하고 있다.
-가르마기 : 승천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김자점(金自點) 묘터 : 우물목고개 남쪽 등성이에 있었던 묘 터. 인조 때 김자점 조상의 묘인데 김자점이 역적으로 몰린 뒤에 묘를 파서 부관참시를 하여 시신이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고속도로 공사로 없어졌다.
-우물목고개 : 승천마을에서 응원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곳에 조선조 때 정항원(井項院)이 있었다. 고갯마루에 좋은 물이 나는 샘이 있어 오고가는 사람이 쉬어 갔다. 과거 보러 가는 나그네도 많이 쉬어 갔는데 김자점이 역적으로 몰린 뒤 역적의 묘 밑에 있는 물을 마시면 재수가 없고, 그 물을 마시고 가면 과거에 합격되더라도 역적이 된다는 소문이 퍼져 원과 주점이 모두 폐쇄되었다고 전한다. 이 우물마저 고속도로 공사로 없어졌다.
-윤민교 묘소 : 목천 현감(木川縣監)을 지낸 윤민교(尹敏敎)의 묘소가 신계리 뒷산에 있다.
 
2-폐지 및 농약빈병 모으기 행사(1995년).jpg▲ 폐지 및 농약빈병 모으기 행사(1995년).
 
▲천정리(泉亭里)
천정리는 목천군 서면 한천리와 괴정리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루어진 마을인데, 마을명은 한천리의 『천』자와 괴정리의 『정』자에서 유래된 것이다.
▶천정1리(덤불미, 한천)
-산신제(山神祭) : 한천마을에서는 시월 초순에 생기복덕일을 택하여 산신제를 지낸다. 그 날 일진에 따라 초저녁 행사는 일곱 시경, 새벽 행사는 한 시에 지내는데 부정이 없는 사람 세 사람을 제관, 주당, 참관인으로 선정한다. 제물로 통돼지를 잡아 머리와 발은 산제당 나무에 매달고, 삼색 실과 쌀을 스물한 번 씻고 스물 한번 체로 쳐서 만든 떡은 산신제를 지낸 후 동네 사람이 모여 나누어 먹는다.
-대골 : 옛날에 대나무가 많이 있었다. 큰골을 말한다.
-엉구렁 : 덤불이 엉글엉글 많이 있어서 엉구렁이라 하는데 산 밑이다.
-용천굴 : 예전에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굴이다.
-다리장골 : 다리실 안의 골짜기를 이르는데 아주 예전에 이곳에 장(場)이 섰다고 하나 확실치가 않다.
-왕자산 : 이 산은 조사가 더 필요한 산이다. 촌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왕자(王子)의 태를 묻은 곳이라고 한다. 혹자들은 근동의 모든 산들이 이 산을 향하여 절을 하고 있는 안산조배(案山朝拜)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는 산의 생김새가 왕자(王字) 모양을 하고 있어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일제 때 도로를 개설하면서 우물목고개의 허리를 잘라 왕자(王字) 형세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동적골 : 예전에 동학군(東學軍)들이 이곳에 숨어 지내다가 세성산(細城山)으로 갔다고 한다.
-청패 : 예전에 청나라 군인들이 이곳에서 패했다 한다.
-학골(鶴谷) : 학의 다리처럼 길게 생겼다. 혹자들은 학이 무리 지어 왕자산(王字山)을 향하여 절을 한다는 군학조배(群鶴朝拜) 형상이요, 또는 학이 알을 품고 그 산을 향하여 절을 하고 있다는 학난조배(鶴卵朝拜) 형상을 하여 왕자산 아래 길지(吉地)가 있다고 전한다.
-모래봉(沙峯) : 모래가 많이 섞여 있는 산인데, 예전에 이곳에서 도자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큰찬샘이골 : 동네 뒤 큰 샘이 있는데 물이 아주 차고 시원하다. 옻 오른 사람의 치료에 아주 효험이 있다 하여 동네 주민들이 위하던 곳이다.
-작은찬샘이골 : 큰 찬샘이 골 옆 작은 샘이 있는 골이다.
-덤불미 : 한천 또는 덤불미라 하며 천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사방에 덤불이 많았으며 마을 가운데 차고 큰 우물이 있었다. 한천이란 지명이 이것에서 유래한다.
-찬샘이골 : 다리실 서쪽에 있는 골짜기기로 찬 샘이 있다.
-사장골 : 안골 너머에 있는 골짜기로 산제당(山祭堂)과 곱돌광산이 있었다.
-안골 : 용척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다.
-용산고개 : 덤불미에서 성남면(城南面) 용산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용척골 : 용추골이라고도 한다. 덤불미 서쪽 왕자봉 밑에 있는 골짜기로 용추가 있었다고 한다.
▶천정2리(괴정골)
-옻샘 : 예전에 샘이 있어서 과거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이곳에서 목을 축였다 하나 지금은 그 흔적이 없다.
-동정골 : 예전에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숨어 있다가 목천 삼뱅이로 옮겨갔다 한다. 산너머 도장리 고랑에 성당 터가 있었다. 천주교회에서는 순교자들을 동정(童貞)님이라고 한다.
-됫골 : 동네 뒷산 고랑을 말한다.
-저건너 : 동네 앞으로 작은 도랑 건너를 말한다.
-욕곡 : 예전에 원이 있었을 적에 이곳에 옥이 있었다고 한다.
-갈월 : 괴정, 노동이라 부르며, 덤불미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갈대가 많았고 느티나무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고려 때 이곳에 갈원이라는 원이 있었다.
-다리실(橋項) : 안 다리실, 바깥 다리실이 있다. 이곳에 마을이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가 뚫리고 목천 인터체인지가 생겨 그 위로 다리가 놓여졌다. 옛날 누가 다리실(橋項)이라고 명명했는지 탄복할 따름이다.
-미곡종합처리장 : 지방도 691호의 신계리 분기점과 고속도로 지하도와의 중간 정도 위치에 있다.
-종돈AI센타(돼지 인공 수정소) : 갈월마을 뒷산 너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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